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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자칭 애국자란 자들이…” 타계 10년 지난 지금도 큰 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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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7일은 여해(如海) 강원용(1917~2006) 목사의 타계 10주기다. 생전에 그의 설교는 ‘사자후(獅子吼·사자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자신을 겨누고, 인간과 사회를 겨누고, 우주적 그리스도를 거론하며 내지른 통찰의 사자후였다. 그래서 ‘과거’만 겨냥하지 않는다. 복잡한 국제정세와 경제난, 청춘들의 절망과 영성의 허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향해서도 그의 설교는 현재진행형 화살로 날아와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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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원용 목사는 “진실의 소리가 잠잠하게 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10주기를 맞아 강 목사의 설교집 『돌들이 소리치리라』(대한기독교서회)가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15일 출간됐다. 해방 직후부터 1960·70·80년대를 거쳐 평생 몸담았던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은퇴한 이후의 설교까지 망라하며 강 목사 설교의 정수(精髓)를 추려 담았다.

설교집 『돌들이 소리치리라』출간
“예수는 누구인가” 끝없이 묻고 답해
성경 해석 문자적 틀 깨는 파격
크리스찬아카데미 세워 민주화운동
17일 경동교회서 음악회 등 추모행사

80년대에 했던 그의 성탄절 설교 ‘왜 기뻐하느냐’는 지금 들어도 파격적이다. 강 목사는 ‘성탄’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우리가 왜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가?’라는 물음에 ‘예수님이 나신 날이니까’라고 대답하는 것과 ‘예수님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이러이러한 분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이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질문을 계속해야 하고, 또 그 질문에 계속해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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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설교집 『돌들이 소리치리라』. [중앙포토]

강 목사는 기독교 신앙이 교리의 옷으로 무장한 신념체계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오히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삶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자체가 예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강 목사는 기독교의 성경 해석에 대한 ‘문자적인 틀’도 과감히 깨뜨렸다. 빅뱅과 우주의 역사, 150억 광년에 달하는 우주의 크기 등을 거론하며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광대한 개념의 우주적 영성을 교인들에게 제시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창조론주의자들은 지금도 강 목사의 설교에 대해 당혹스러워 한다. 강 목사에게 성경과 과학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과학적 우주관을 적극 수용하며 성경에 담긴 예수의 무한한 가슴을 열어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창조주의 현존을 묵상했다.

그는 군사정권 치하의 암울한 현대사를 헤쳐 갔다.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설교를 서슴지 않았다. 오히려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8년께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기도 했다.

경동교회 채수일 담임목사는 설교집 발간사에서 “(강 목사의) 설교는 ‘빈들의 소리’였다. 그 설교 안에 복음과 시대를 꿰뚫는 예언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며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강원용 목사님의 그 생생한 선포를 듣고 싶어한다”며 강 목사를 그리워했다.

강 목사는 80년대 부활절 설교에서 ‘참 목자와 거짓 목자’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거짓 목자들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자칭 애국자라고 하는 자들이 백성을 억압하고, 민족을 잘살게 하기 위해 경제발전을 한다고 하면서 양들을 착취하고, 성전 안에서 종교적 선전을 통해 순진한 신도들을 속이는 무리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는 우리 안에 ‘어둠’이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이 세상에 속한 헛된 욕심을 추구하는 욕망 그리고 오만과 편견.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어둠입니다.” 이 어둠 속으로 하나님의 빛이 들어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럴 때 거짓을 듣고 세상을 따라 살던 나의 삶 전체의 방향이 뒤집어 지는, 삶의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이런 대역전 없이는 아무리 몇십 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 해도, 집사나 장로나 목사가 된다 해도, 부활한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그의 사랑 안에 살지 못하게 됩니다.” 타계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2016년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재단법인 여해와함께는 17일 추모행사를 갖는다. 남한강 공원묘원 묘소를 참배하고, 경동교회 본당에서 음악회 등 추모의 밤(오후 7시30분)을 갖는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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