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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덥수룩한 수염, 알고 보니 ‘럼버섹슈얼’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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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른바 ‘민생탐방’ 중인 남성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수염이다. 과거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에 이어 최근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보여 준 수염과 허름한 옷차림이 하나의 정치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김무성·문재인·박원순·손학규
남성미·고뇌 상징 미국서도 트렌드
이주영은 세월호 때 130일 길러

패션계에선 이를 ‘럼버섹슈얼(lumber sexual)’이라고 한다. ‘나무꾼 패션’ 정도로 해석된다. 남성미를 강조한 수염과 인디언풍 체크남방이 미국에선 핫(hot)한 패션 트렌드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패션이 한국 정치에선 중진 정치인의 고뇌의 상징처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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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염으로 상징되는 ‘럼버섹슈얼’ 정치를 보여준 인사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대부분 민생탐방 때 수염을 길렀다. [중앙포토·뉴시스]

지난 8일 민생탐방 중 서울 여의도 자택 앞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무성 전 대표는 “왜 수염을 길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 전 대표는 “장기간 여행할 때 남자가 돼 보면 안다. 이걸 깎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라며 덥수룩한 수염을 만졌다. 한 기자가 “문재인 전 대표를 따라 했느냐”고 묻자 “그런 말에 제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답했다. 20대 총선 불출마로 야인이 된 문 전 대표도 지난 6월 네팔·부탄을 방문했을 당시 ‘나무꾼’ 복장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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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나무꾼 복장으로 끊임없이 현실정치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김 전 대표는 12일 “뒤늦게 친박 진영에 붙은 나쁜 놈들…. (친박 후보를 옹립하면) 당이 깨진다”는 경고음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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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 [중앙포토·뉴시스]

문 전 대표도 6·25에 맞춰 히말라야에서 안보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지난달 9일 인천공항 귀국길에선 “정치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다. 국민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복장과 관련, 문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남성들이 흔히 하는 행동 이상의 의미는 없다”며 “정계 입문 전인 2004년 히말라야에 갔을 때도 수염을 길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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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중앙포토·뉴시스]

앞서 손 전 고문은 2006년 경기도지사 퇴임 후 1만2475㎞를 이동하면서 ‘100일 민심 대장정’에 나섰다. 당시 제빵사·광부·농부·용접공·염색공·지게차 운전사 등 93개 직업을 체험했다. 그때 그의 얼굴도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은 현재 전남 강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 사석에서 “예전엔 수염도 깎지 않았는데 용모를 단정하게 하려 노력한다. 요즘은 수염을 매일 깎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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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중앙포토·뉴시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현 시장도 선거를 앞두고 49일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털북숭이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기 위한 기자회견장에서였다. 이를 계기로 5%대이던 지지율이 40% 이상으로 솟았다.

박 시장은 지금도 “내 인생은 백두대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당시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다.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도 해양수산부 장관 때인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나자 수염을 기르며 130여 일간 사고 현장을 지켰다. 당시 그의 수염은 참회 의미로도 해석됐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정훈(정치학) 교수는 14일 “정치인의 변신은 대중의 비난을 받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뭔가를 준비한다는 의도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서용구(경영학) 교수는 “ 이제 정치문화가 달라져 ‘돈 드는 외유’가 어려워졌다”며 “ 코스프레 정치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유성운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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