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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너는 살이 쪘고 나는 보기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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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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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멕시코의 여자 체조선수 알렉사 모레노가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악플러(악플 다는 사람)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대표 이은주 선수가 53위를 한 개인 종합 예선전에서 31위로 선전했다. 하지만 실력이 아니라 ‘살’이 문제였다. 깡마른, 그래서 요정이라고 불리는 다른 여자 체조선수들과 달리 살집이 있는 둥글둥글한 체형이라는 이유만으로 SNS상에서 융단폭격을 맞았다. 핫도그 먹기 대회에 출전하라느니 돼지 같다느니 하는 막말이 난무했다. 일부는 “체조선수로서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말은 점잖게 했지만 결국은 “당신은 살이 쪘고, 그래서 나는 보기 싫다”는 비난일 뿐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올림픽은 나가고 싶다고 아무나 나갈 수 없다. 기계체조 개인전만 해도 출전권이 각국에 딱 1장씩이라 이번 대회엔 59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선 모레노가 가장 잘하는 선수라 선발됐을 터이고, 만약 체중 탓에 기량에 문제가 있다면 악플러들이 구시렁대기 전에 멕시코 체조 대표팀 코치가 먼저 문제 삼았을 것이다.

비단 모레노뿐 아니라 모든 여자는 대중에 노출되는 순간 체중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런웨이 위 모델에게나 들이댈 법한 엄격한 몸매를 요구받으며, 조금이라도 살집이 보이면 공격을 받는다. 손연재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접힌 옆구리살(꽉 조인 고무줄 의상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동안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다. 영국의 다이애나비는 폭식증까지 걸릴 정도였다.

미디어의 영향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나도 마르고 늘씬한 여자가 보기에 더 좋다. 그렇다고 통통한 여자가 비난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모레노가 평균대 경기를 하는 사진을 보자마자 콜롬비아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아름다운 그림이 떠올랐다. 어떤 인물이든 풍만한 몸매로 재해석한 그만의 예쁜 ‘뚱보’ 말이다. 재밌는 건 보테로는 한번도 “뚱뚱하게 그렸다”고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뚱뚱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볼륨과 관능미를 표현했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다이애나비의 폭식증을 치료했던 영국의 정신분석가 수지 오바크는 완벽한 몸에 대한 강박 탓에 소수 언어가 사라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신체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다 정말 뚱보는 그림에서나 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