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한 명』 작가 김숨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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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가 많다…….

그녀는 한밤중에 깨어나서도,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기다리가다도, 밥을 먹다가도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집에서 10리 밖을 모르고 살다가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한 명』 44p.)

김숨 작가의 신작 『한 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혹은 익숙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 남은 어느 시기를 배경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엮으며 진행되는 『한 명』은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가오는 위안부들의 고통은 믿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까지 생기지만, 작가는 그럴 때마다 인용 출처를 밝히며 실제 증언 내용임을 알린다. 위안부 생존자가 단 한 명 남았다는 설정도,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사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던 작품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일인 8월 14일은 전 세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세계 위안부의 날'이 됐다. 세계 위안부의 날을 앞두고 소설 『한 명』의 김숨 작가를 만났다.

‘위안부’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2년 전쯤에 『뿌리 이야기』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 소설에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등장해요. 중심 인물은 아니고 스치듯 지나가는 인물인데 저에겐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해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작년 한 해에 9명이 돌아가셨잖아요. 언론에서 이를 보도할 때마다 저는 카운트다운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 한 분도 남아 있지 않은 시기가 곧 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한 명’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죠. 제목이 먼저 저에게 온 거예요. 그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생각해 보면 이제서야 제게 인연이 닿아서 썼구나 싶어요.

작품을 구상할 때 '인연이 닿는' 소재를 기다리는 편인가요.
우연히 오는 것을 제가 받아들이면서 필연이 되는 것 같아요. 『L의 운동화』(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을 소재로 한 소설)도 복원 작업 소식을 듣고 집필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우연히 오는 것이 있어요. 이 과정에서 좁았던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해요. 제가 원래 역사를 잘 아는 소설가가 아닌데, 『L의 운동화』와 『한 명』을 쓰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요.

책 제목이 먼저 왔다고 할 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에선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중심으로 묘사했어요. 저는 그녀 안에 모든 피해자들의 영혼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살아돌아온 제각각의 피해자들과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 그 '한 명'들 말이에요.
이 작품으로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기 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가를 알리고 싶었어요. 위안부 피해자가 현재도 ‘이슈’이고 언론에서 보도가 나오니까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너무나 익숙하니까. 그러나 위안소에서 그분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또 살아 돌아온 이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이 책을 통해 위안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 소설은 객관적인 사실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저의 소설적 상상력이 피해자들의 경험을 과장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그리고 실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허구였으면 좋겠다는 증언들도 있었고요. 제가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면 독자들이 허구처럼 느낄까봐 의도한 면이 있죠.
소설 속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의 사건인 것처럼 대해요. 이와 같은 방식도 의도적인 건가요?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니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이 일들은 70년 전에 벌어져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기억을 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글로 남기고 싶어도 읽지도, 쓰지도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죠. 이 점에서 아우슈비츠 유대인 생존자들과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남녀노소 갇혀있었고, 그 중에는 지식인도 있어 생존 후 직접 증언록을 썼어요.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읽지도 쓰지도 못했고 증언을 남길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기억에 의존해 증언할 수 밖에 없어요.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하면 혼동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소설 속 그녀가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라고 생각을 하는 구절이 있어요. 아마 13살에 끌려가서 온전한 자신을 박탈당한 채 수십 년을 살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 소설은 그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그녀에게 자아를 찾아주고 싶었어요.

그녀는 만주 위안소 이름은 모르지만, 자기 피와 아편을 먹고 죽은 기숙 언니의 이빨이 석류알처럼 반짝이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삿쿠에 엉겨 있던 분비물에서 나던 시큼하고 비릿하던 냄새도. 검은 깨를 뿌린 듯 주먹밥에 촘촘 박혀 있던 바구미의 개수까지도.

…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

(『한 명』 151p.)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소재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소재잖아요. 이를 이겨내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혹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잘못 써서 피해자 분들께 누를 끼칠 까봐 부담감도 있었죠. 다른 작품을 쓸 땐 소설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썼는데, 『한 명』은 계속 점검을 반복했어요. 틀린 건 없는지, 이런 부분을 넣었을 때 혹시나 피해자분들을 오해하게 되지는 않을지 고민하면서 확인했죠. 전체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어요.

화해·치유 재단, 좋은 말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줘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피해자들이 한결 같이 하시는 말씀이 ‘사실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예요. 그러나 합의를 진행하는 분들은 피해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을 못하고 있어요. 합의 내용에 따른 재단이 '화해·치유재단'이죠? '화해'와 ‘치유’는 정말 좋은 단어인데, 누가 어떤 의도로 쓰느냐에 따라 이 단어들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아요.
소설처럼 단 한 명만 남기 전에, 생존해계신 41명의 할머니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분들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원하시는 것, 사실 인정과 사과가 이뤄지도록 도와야죠. 할머니들은 역사 의식을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후세대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바람으로 끔찍한 기억이지만 더듬어서 적극적으로 증언을 해주시는 거죠. 우리가 이를 받들어 그분들의 일생을 남길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이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과거의 전쟁부터 현재 내전 속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여성 피해자들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신에게 소원을 빈다면 그녀는 하나만 빌 것이다. 고향 마을 강가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열세 살 그때로.

인간이 마침내 달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과학이 발달해 인간을 달나라에까지 보내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고향 마을 강가에 도로 데려다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명』 210p.)

한 명’이라는 소설을 한 줄로 정의하자면?
그녀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이 소설, 또는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감정적으로 단편만을 보지 말고, 지금 현재 이슈나 역사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어요.

서울 역삼동 더카페에서 김숨 작가와 만난 TONG청소년기자들.

글=성효정·최제윤(용인외대부고 1) TONG청소년기자 목동지부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도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장소협조=서울 역삼동 '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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