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陋軒 -하루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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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9면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살면 이름을 얻는다.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면 영험한 것이다.(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이 누추한 방에는 오직 나의 향기로운 덕이 있을 뿐이다. 이끼는 섬돌을 따라 푸르고 풀빛은 주렴에 푸르게 비친다.(斯是陋室 惟吾德馨.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훌륭한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고 비천한 자들이 왕래하지 않는다.(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거문고 연주하고 금강경 읽기 좋다. 음악소리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문서 읽는 노고도 없으니(可以調素琴 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남양 땅 제갈량의 초가집이요 서촉 땅 문장가 양웅의 정자로다.(南陽諸葛盧 西蜀子雲亭)


공자도 말했지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오’라고.(孔子云 何陋之有)”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이다. 검박(儉朴)한 군자의 삶을 희망한 명문이다. 첫 구절은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스 원’에서 미국 대통령이 일반 여객기에 탑승한 뒤 나오는 기장의 대사 “이제부터 리버티 24가 에어포스 원이다”와 같은 맥락으로 인용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의 “군자가 사는 곳에 어찌 누추한 곳이 있으리오(君子居之 何陋之有)”란 문구는 명(明)대 철학자 왕양명(王陽明)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구이저우(貴州)성 슈원(修文)현인 당시의 용장(龍場)으로 좌천당한 양명은 동굴 양명동(陽明洞)에서 『맹자(孟子)』의 양지(良知·태어나면서 갖춘 지혜)와 『대학(大學)』의 치지(致知·앎에 이르다)를 한 데 엮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치량지(致良知) 학설은 “앎은 실행의 시작, 실행은 앎의 완성(知是行之始 行是知之成)”이란 지행합일(知行合一) 이론으로 발전한다. 양명은 원주민이 지어준 초가집을 ‘하루헌(何陋軒)’이라 이름짓고 『하루헌기(何陋軒記)』를 지었다.


김영란법 발효일이 다가오자 관련 기사가 홍수다. 문득 지난봄 출장길에 본 하루헌 편액(扁額)이 떠올랐다. “누추함은 없다”는 공자와 유우석·왕양명의 가르침이 ‘영란 시대’를 맞는 지혜란 생각도 함께다.


신경진베이징 특파원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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