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시」는 당연히「개시」|사극「임진왜란」작가 신봉승씨, 김용숙교수의「고증잘못」에 반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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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MBC-TV의 인기사극『임진왜란』에 궁중복식과 내인들의 이름고증이 잘못됐다고 김용숙교수(숙대 문과대학장·국문학)가 지적한데 대해(중앙일보 3월26일자·일부지방 27일자 11면 보도)이 사극의 집필자 신봉승씨가 해명을 제기해 왔다. 다음은 그의 기고『조선조천민들의 이름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사비나 사노들의 이름이 대단히 많이 나온다. 왕조실록이 한문으로 기술되었으므로 그들의 이름도 한문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한문으로 적혀있는 천민들의 이름은 그 음가를 한문으로 고쳐 적었을뿐 처음부터 한문으로 된 이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구슬」이라는 이름은 구슬이(세종5년 7월4일조)로 적고「방울」이라는 이름은 방올(세종23년9월l7일조)로 적고 있으며「보배」의 경우는 보배(세종18년7월6일조), 혹은 보배(태종10년5월1일조)로 적고 있다.「보배」의 경우 배와 배를 혼용하고 있는 것은 음가를 옮겨 적은 사람의 취향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진다.
사노에 해당하는 남자의 이름도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가 있는데「말똥」의 경우는 마질동 (세조14년9월6일조),「쇠똥」은 우질동,「개똥」은 개질동이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표기에서 질자를 쓰면 경음화된다. 그래서 임거정을 왕조실록에서는 임거질정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또 어을자동, 어을운과 같은 경우의 을은「ㄹ」과 같은 방침으로 쓰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여성의 경우 가은지(세종10년11월21일)나 내은가이(태종7년12월18일), 내은이(세종7년12월10일)등도 표기 되었을때의 은자는「ㄴ」과 같은 방침으로 쓰이고 있으니 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그와 유사한 한자를 빌어서 적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김용숙교수가 지적한 개시의 경우도 위에 적은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개시와 같은 계열의 이름으로 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천녀는 가시 (명종4년5월기축조), 가시(선조39년6월무오조), 가시례(광해5년6월신축조) 등이 있다. 개시를 비롯한 이들의 이름을 가장 정확히 읽는다면 당연히「개똥이」가 되어야 옳은 것이다.
김교수의 글에「궁녀의 이름이 그런 속명일리가 없다」라는 귀절이 있지만 김개시는 입궁전에 사비였음이 왕조실록에 기술되어 있으므로 잘못된 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계축일기』에는 분명히 개시를「가히」라고 적고 있다. 이때의「가히」는 개시의 이름이 아닐것이다. 이를테면「개똥이」와 같은 비속한 말을 입에 담기 민망했으므로「가히」라고 적었다고 보는것이 옳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천녀들의 이름가운데 가장 많이쓰인 이름이 가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모두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가이는 태종5년·14년·l8년, 세종10년에 자주 거명된다. 또한 천녀들의 이름가운데 가자를 쓰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에 유념해야한다. 가도지(태종5년11월5일), 봉가이(동), 가지압(태종16년4월14일), 분가이(태종16년5월24일), 약가이(세종2년1월21일), 동질가이(세종10년12월14일), 덕가이(세종12년11월9일), 가야지(세종21년5월3일) 등인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추려본것이지 애써 찾은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한다면 조선조 천녀들의 이름은 대부분이 속어로 되어있고 그 가운데서도 가이가 많다는 것이 바로『계축일기』에 개시를「가히=가이」로 적을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개시는「개똥이」라고 읽어야 옳은 것이나 그것을 여러차례 입에 올리기가 민망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말의 음가를 개시라고 적었기에 오늘에 이르러「개시」라고 읽는 것은 조금도 하자가 없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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