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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525조 엔 vs 556조 엔…일본 GDP 31조 엔 차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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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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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일본 경제의 현상 인식을 뒤집을 수도 있다.”(세키네 도시타카 일본은행 조사통계국장)

생산·지출 위주로 계산한 내각부
“2014년 0.9% 마이너스 성장” 발표
분배 중심으로 산정한 일본은행
“전년 대비 2.4% 실질 성장” 주장
한국 GDP는 한국은행이 통계 전담
생산 중심 산출, 일본 내각부와 비슷

“(통계 해석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사카마키 데쓰로 내각부 총괄정책연구관)

최근 일본 내각부와 일본은행 간에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0일 보고서에서 일본의 2014년 국내총생산(GDP)이 2.4%(실질 기준)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내각부 산하 경제사회종합연구소는 이미 전년 대비 0.9% 마이너스 성장했다고 밝힌 상태였다. 일본은행이 공식 GDP통계기관인 내각부의 집계를 부정한 셈이다. 내각부는 2014년 GDP를 525조 엔으로 산출했고 일본은행은 556조 엔의 시산(試算) 값을 얻었다고 했다. 금액으로는 31조 엔(약 336조원), 성장률로는 3.3%포인트 차이. 이는 일본 GDP의 5.9%에 해당하며 싱가포르 GDP 2946억 달러(약 327조원)와 맞먹는 규모다. 통계적 오차라고 하기엔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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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어느 쪽 수치가 맞느냐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특히 2014년은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과 더불어 소비세율 인상으로 세수가 크게 늘어난 해다. 과연 내각부의 조사 결과가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던 시기에 때마침 일본은행이 기름을 부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은행의 시산 결과가 정부의 통계위원회에도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어째서 두 기관의 산출 결과가 크게 다를까. 일본은행의 보고서를 짚어봤다. 보고서는 내각부와 달리 ‘분배’ 측면에서만 GDP를 계산했다. 내각부는 지출과 생산 측면을 중심으로 GDP 지표를 생산해왔다. GDP 산정 방식은 크게 생산·지출·분배 등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생산은 부가가치의 총합을, 지출은 가계소비와 투자를, 분배는 소득과 영업잉여금 등을 더해 구한다. 일반적으론 하나의 기준만으로 통계를 추출한 뒤 나머지 두 기준의 수치를 보정해 세 기준의 산출 값을 똑같이 맞춘다. 한 경제의 생산과 소득·지출 각각의 합은 같다는 ‘국민소득 3면 등가의 원칙’에 따라서다.

중심이 되는 기준은 나라의 기초 통계가 탄탄하고 경제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경로를 골라 선택한다. 내각부의 경우 가계의 최종 소비와 민간 기업의 설비투자 등을 더한 지출 통계를 기준 값으로 삼는다. 이후 생산 통계를 낸 뒤 임금·세금·영업잉여금 등을 합한 분배 값을 보정해 생산 값과 같게 한다. 이후 생산 값을 보정해 지출 통계에 맞춘다. 그런데 일본은행 보고서는 지출·생산을 배제하고 분배 측면만 따로 분리했다. 분배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했다. 내각부가 그동안 분배를 일종의 보조 통계로만 활용해 왔기 때문에 현재 경제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게 보고서 주장이다.

보고서는 국세청의 세무 데이터를 활용했다. 납세 의무가 있는 개인·법인의 소득 통계가 모두 잡히며 자신의 소득과 세금을 과다 신고하는 경우가 희박하기 때문에 수치가 부풀려질 염려가 적다는 것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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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근로자 임금의 경우 내각부가 1인당 평균 임금에 근로자 수를 곱해 구하던 것을 보고서는 개인주민세 과세 대상자의 급여 총액으로 대체했다. 비과세 대상자는 별도로 추산했다. 기업의 영업잉여 역시 법인기업 통계의 영업이익과 법인세 수입을 활용했다. 내각부가 생산 측 GDP 통계에서 근로자 임금 등을 제외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GDP 통계 산출 방식으로는 안 잡히던 31조 엔의 수치를 찾아냈다.

보고서에서는 세무 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GDP 통계를 보다 정확히 추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내각부가 산출액을 측정할 때 쓰는 산업·상업·특정서비스 등 기초 통계는 기업·가계를 대상으로 한 설문 통계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총무성과 경제산업성의 ‘경제 센서스’의 경우 대상 기업 수가 175만 개에 불과하다. 또 표본이 오래돼 응답률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무 데이터에 등록된 법인세 신고 수는 262만 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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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중앙포토]

이런 조사 방식은 꽤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유엔이 정한 회계기준인 SNA(System of National Accounts)에 부합하지 않아 공식 통계로 인정받기 어렵다. SNA는 국민소득 통계와 산업연관표·자금순환표·플로계정·국민대차대조표 등 5개를 종합해 한 국가의 경제 활동 및 자산·부채를 측정하는 잣대다. 나라마다 세목과 세율이 다르고 나라별 세금 변수를 동일한 회계기준에 반영하기 어려워 SNA는 세금 항목은 제한적으로 다룬다.

또 해마다 조세정책이 바뀌고 세무 데이터가 공공 부문 등은 포괄하지 못해 분배 측면만으로 GDP를 대표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세청 통계의 항목과 GDP 작성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세무 데이터만으론 기초 통계의 다양성도 떨어진다”며 “(보고서는) GDP 통계가 현실 경제를 잘 반영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도 “생산·지출·분배 등 각 측면의 원천 통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기 때문에 단면만 따로 떼어내 보는 것은 전체 통계의 절반만 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통계로 인정받기 어려운데도 일본은행이 내각부를 지적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뒤에 감춰진 ‘의도’를 파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보고서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26일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참석해 “세수가 좋은데 GDP는 예상을 밑도는 것에 위화감이 든다”며 보고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보고서는 구로다 총재에게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행으로서는 GDP 성장률이 높아야 양적완화(QE) 등 부양책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은행 입장에선 대규모 양적완화에 정부가 많은 돈을 풀었는데도 내각부 통계에 성장률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은행 총재까지 나섰으니 내각부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닛케이신문은 “민간이라면 좋은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일본은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는 내각부 간부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실제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일본은행의 시도는 나쁘지 않다는 우호적 평가도 많다. 현실 경제를 잘 반영하기 위한 여러 방법으로 GDP를 산출해 보려는 노력은 건강한 시도라는 것이다. GDP는 어디까지나 추계(推計) 통계다. 한 나라의 개인과 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활동 하나하나를 한 통계에 오롯이 담아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GDP를 단지 경제 상황을 시계열로 살펴볼 수 있는 통계라고 의미를 축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공유경제 등 SNA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통계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SNA 기준이 마지막으로 바뀐 것은 8년 전인 2008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생산에만 치우친 GDP는 불완전한 통계며 소득·소비를 중심으로 한 가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통계의 다양성을 얻기 위해 미국도 세무 데이터 등 행정 기록을 이용해 GDP를 별도로 추정해 공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 일본 내각부와 비슷한 방식으로 GDP 통계를 내고 있다. 기준은 생산 측면이다. 생산 측으로 GDP 통계를 낸 뒤 분기별로 지출 측면을 보정하며, 분배 측은 1년에 한 번 생산 측면의 보조통계로 활용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의 분석이 타당하다고 볼 순 없지만 GDP 통계란 태생적으로 오차가 있다”며 “실제 경제 생활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보완적 통계 개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집계기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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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기획처가 생산 측, 재무부가 분배 측,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이 지출 측면의 GDP를 산출했다. 그러다 6·25 발발 후 유엔의 원조를 받기 위해 1957년 한국은행으로 일원화됐다. 최근 GDP 등 국민계정 통계 작성 주체를 두고 한은과 통계청이 마찰을 빚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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