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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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해당했다  #1

한 남자가 낭떠러지 밑에서 발견되었다.
내가 찾았다.

사지는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키 큰 수풀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그새 짐승의 밥이 되어서 영영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남자는 이 지역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시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고급 정장을 입었고, 나이도 서른 안팎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젊다. 손목에 차고 있는 번쩍거리는 시계는 고급 예물시계였다. 왼손 약지에는 반지를 꼈던 자국이 남아있었다. 누군가 빼갔을 수도 있고, 평소에 일부러 빼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혹시, 강도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값나가는 예물시계를 그냥 뒀을 리가 없다. 이 모델 시리즈의 최저가 제품도 어지간한 대형 승용차 한 대 값보다 비싸다.

어떻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실족사를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가슴팍과 배에 칼처럼 예리한 날붙이로 여러 번 찌른 자국이 있었다. 못해도 열댓 번은 찌른 것 같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시신을 발견한 유일한 목격자다. 복잡한 심경으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것뿐이다. 시신을 발견했다고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고, 누군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그저 이렇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나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벌써 열흘이 넘도록 이러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체는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살해당했다.

죽기 전의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꽤 기반이 튼튼한 중견기업체의 총무과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상사에게도 인정을 받는 편이었다. 봉급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고 상여금도 연간 400퍼센트나 되었다. 작년에 대리로 진급하고 나서는 외근이 잦아졌지만 회사에서 차량 유지비의 전액을 지원해주었다. 이만하면 딱히 불만사항이 없는 괜찮은 직장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아름다운 아내도 있다.

대학 선배 소개로 만났는데 6개월간 연애하다가 작년 가을에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내가 먼저 청혼했다. 당시 나는 아내에게 흠뻑 빠져 있었고, 그 뜨거운 감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이렇게 죽어버린 후에도 말이다.

아내가 간절히 보고 싶다.

지금 아내는 홀로 집을 지키며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겠지.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죽은 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나 안타깝다. 누군가 내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내에게 내 죽음을 알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외진 장소까지 찾아올 사람이 있을까? 거기다가 여기는 아득한 낭떠러지 밑이다. 벌써 열흘이나 이곳에 있었지만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워낙 외진 장소여서 어쩌다가 청설모 같은 작은 산짐승들이나 이름 모를 새들이 다녀갈 뿐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시체를 유기하기엔 정말로 최적인 장소를 골랐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기억의 일부분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지금처럼 내 시체가 흉측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누구에게 살해당했고, 어떻게 이곳에 버려졌는지, 그 일련의 과정이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동료들과 퇴근길에 가벼운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와 통화를 하던 장면까지였다. 나는 아내에게 늘 하던 대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 역시도 똑같은 대답을 해줬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하얀 암흑이 찾아왔다.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공백.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쩌면 내가 죽었기 때문에 ‘두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히 ‘생각’을 하고 있다. 도무지 모르겠다, 뭐가 뭔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만큼은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만약에 그것마저 깡그리 지워졌더라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괴로워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건 ‘무력감’이다.

죽음을 맞으면 어떤 존재, 그러니까 저승사라든가 천사 같은 존재가 찾아와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나 보다. 열흘이 넘도록 이렇게 있었지만 그 어떤 ‘존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게 얼마나 길고 긴 세월일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다. 사무치도록 외롭다.

갑자기 감정이 격류처럼, 편향적으로 치달았다. 절제할 수가 없다. 슬픔이 천근만근처럼 나를 짓눌렀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육성을 낼 수 없는 지금 답답함만 가중될 뿐이었다.

어느 순간, 고통이 분노로 바뀌었다.

누구일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심어준 사람이. 그를 찾고 싶다. 찾아서 묻고 싶다.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되갚아주고 싶다. 가르쳐 주고 싶다. 이 끔찍한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다. 분노가 묵직하게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이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 느낌, 정말 괴롭다.

아내를 생각하면 좀 나아질까? 그래, 그녀라면 나를 구원해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내.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아내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 외롭고, 쓸쓸하고.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고.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니 불안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겠지. 차라리 내가 죽었다는 것만이라도 안다면, 그나마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아니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이유는 모른다. 몇 번인가 시도를 해봤지만 늘 이곳을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당연하다. 나는 죽은 사람이니까.

인정하자. 나는 이제 죽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무기력하다. 나는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이미 죽어버렸다. 그러니 무기력하다. 무기력한 존재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맞다, 죽은 자는 무기력한 거다. 그렇게 무력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의식도 납덩이를 목에 매단 것처럼 한없이 가라앉는다.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진다. 내 죽음에 대한 의문도, 나를 죽인 살인마에 대한 분노도, 내 시체를 지켜보는 짓도,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내…….

아내도, 귀찮다. 아내마저 귀찮다? 아니다! 아내만큼은 잊을 수 없다!

떠올려라, 나는 살해당했다. 우발적인 살해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날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만약에 아내도 나처럼 위험하다면? 안 돼!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다. 그녀만큼은 절대로...

……!
소리? 소리!

이곳에 머물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분명히, 징? 그래, 확실하다!
징을 치는 소리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징을 치고 있다. 징 소리에 집중하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나를 휘감았고, 어느 순간 나는 풍선처럼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징 소리에 이끌려 어딘가로 흘러갔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꽃씨처럼, 물 위에 흐르는 낙엽처럼. 그렇게 징 소리를 따라갔다. 마침내, 나는 이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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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 소리가 뚝 멎었다. 덩달아 나도 그 자리에 멈췄다. 얼마나 멀리 왔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른들이었다. 사람들은 뭔가를 열중해서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징 소리가 들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제단이 차려져 있고, 그 앞에선 형형색색 화려한 무복을 걸친 젊은 여자가 양손에 작은 칼을 쥐고 뭔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일정한 음률이 있는 것이 아마도 일종의 무가(巫歌)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치성을 드렸다.

다시 징 소리가 울리고,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멍하니 무녀의 춤사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있는데,

원통하고, 또 원통하구나. 이 원통한 사연은 어찌할꼬.”

무녀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탄식하며 허리를 숙였다. 순간 무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괴한 장면이었다. 시선을 뗄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무녀에게 몰입되었다.

무녀가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역시 무녀라서 나를 볼 수 있는 것일까? 무녀의 눈빛이 무서웠다. 너무나 무서워서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였다. 귀기鬼氣가 서려있다는 말은 이럴 때 두고 쓰는 것이리라. 죽으면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가 무녀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버티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무녀는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누군가 내 옆을 지나쳐갔다. 무녀만큼이나 젊은 여자였다. 아니, 더 어려 보였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뽀얀 살결에 머리가 길었다. 얼굴도 곱상하고 차분해 보였다. 표정이 너무나 어둡다는 것을 빼면 괜찮은 미모였다. 그런데 어딘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걸음걸이였다. 더욱 이상한 점은 걸음을 뗄 때마다 그 자리에 물이 고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의식하지 않았다.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여자가 어떤 노인의 몸을 그냥 통과했다. 또 그 앞의 남자도, 그리고 다시 그 앞의 아줌마까지도.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도 그녀처럼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고 마치 연기처럼 통과했다. 덕분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여자는 무녀 앞에서 멈췄다. 나도 그녀의 뒤에 조용히 섰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선 어떤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무녀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옹알이를 하듯 뭔가를 중얼거렸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잠자코 그 웅얼거림을 듣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 엄마, 나 여기에 왔어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입모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의사가 내게 명료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무녀도 입을 열었다.

엄마, 엄마, 나 여기에 왔어요.”

다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영순이에요, 엄마. 엄마 딸, 영순이가 왔어요.’

무녀도 같은 말을 했다. 마치 앵무새처럼, 여자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영순이에요, 엄마. 엄마 딸, 영순이가 왔어요.”

아아! 혹시, 그런 건가? 이 무녀는 라디오처럼 여자의 의사를 수신해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이? 무녀니까, 당연히?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봐! 이봐! 내 말이 들려?

나는 무녀에게 소리쳤다.

이, 이, 이봐! 이봐! 내 말이 들려!”

무녀가 걸쭉한 목소리로 내 말을 흉내 냈다. 그게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워했다. 어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머리를 더욱 조아리며 천지신명을 찾는 할머니도 있었다. 무녀도 당황스러웠는지 두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어이! 내 말이 들리는 거야? 정말로? 진짜? 나는 다시 한 번 무녀에게 소리쳤다.

 “어이! 내 말이 들리는 거야? 정말로? 진짜?”

 예상이 맞았다. 무녀는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와하하하하! 내 말이 들리는구나. 진짜로 들려!

 무녀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와하하하하! 내 말이 들리는구나. 진짜로 들려!”

 징을 치던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달아났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남자도 있었다. 사람들이 동요하자, 내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르다가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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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우리가 연애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웅진 시작), 한국 환상문학단편선(웅진) 기획 및 작품 수록
영화소설 '열한 시', '또 하나의 약속', '수상한 그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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