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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줄어든 사우디, 국민 호주머니 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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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오일머니가 넘쳐나던 사우디아라비아, 이젠 옛말이 됐다. 세계 1위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2014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혔다.

비자 수수료 6배, 최대 234만원
폭주족 교통 범칙금 586만원
재정난 타개 푼돈 모으기 작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격은 2014년 7월 91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월 33달러까지 추락했다. 유가는 그 후 몇 차례 반등했지만 여전히 40달러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저유가 직격탄을 맞은 사우디는 지난해 재정적자가 980억 달러(약 108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규모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런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수수료와 벌금을 올리면서 푼돈 끌어모으기에 나섰다.

우선 규정을 고쳐 오는 10월부터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는 6개월짜리 비자 수수료를 800달러(약 88만원)로 올리기로 했다. 지금의 6배다. 2년 복수비자(상용비자) 발급비는 무려 8000리얄(약 234만원)에 달해 업무차 사우디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도 대폭 인상했다. 일례로 현지 남성들이 즐기는 ‘드리프팅(drifting)’을 하다 처음 적발되면 2만 리얄(약 586만원)을 내야한다. 드리프팅은 자동차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속도를 높인 뒤 의도적으로 핸들을 꺾어 바퀴가 옆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경주 기술이다. 이 밖에 길거리 광고판에 광고하는 비용도 3배로 올렸다.

사우디는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이슈로 세계 각국이 화석연료인 석유 소비를 줄이는 가운데 장기적으로 태양열·수력·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원유 이외의 재정수입을 현재 1635억 리얄에서 2020년말까지 5300억 리얄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수도·가스·전기료 등을 인상하고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한편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늘려 세수를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 수십 년간 오일머니를 이용해 교육·의료·전기·수도 등을 무상으로 누려온 사우디 국민 입장에선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타메르 엘 자야트 사우디 국립상업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무엇이 됐든 여러 가지 요금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메시지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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