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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세계여행 67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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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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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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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심정이었다. 무모한 줄 알았지만 시도조차 안 할 순 없었다. 여행가 임택(56)씨는 지난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영사관을 찾아갔다. “북한을 통해 남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영사의 답변은 단호했다. “절대 불가입니다.” 임씨가 다시 물었다. “북측과 접촉하고 싶습니다.” 영사가 설명했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동해로 가는 페리로 돌아가세요.”

임씨는 마을버스로 세계 한 바퀴를 돌았다. 2년 전 10월 25일 마을버스 ‘은수’를 경기도 평택항에서 남미로 실어 보냈다. 페루 수도 리마를 시작으로 이달 초 여행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오는 25일 동해시로 돌아와 한국을 일주한 다음 30일 서울대병원에서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아프리카를 거쳐 아시아를 횡단하는 677일간의 대장정이다. 그간 5대륙, 48개국, 147개 도시, 7만㎞를 주파했다.

웬만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시대, 그럼에도 임씨의 ‘외출’은 각별하다. 무엇보다 은수. 은수는 서울 종로 12번 마을버스 은수교통의 준말이다. 서울대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주로 태우고 다녔다. 여행 전 운행거리만 46만㎞, 폐차를 6개월 앞둔 ‘노인’ 신세였다. 수입 오퍼상으로 일한 임씨는 은수에서 중년의 자신을 발견했다. “나도 저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래, 저 마을버스와 함께 멋진 도전을 해보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의 탈출이요, 잊고 살았던 청년정신의 회복이었다.

여행은 고난에, 고난이었다. 사막 모래폭풍에서 길을 잃었고, 국경에 갇혀 난민 신세가 됐고, 여행물품을 도둑맞기도 했다. 판문점을 통해 한국에 돌아오려던 소망도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임씨는 행복했다. 위기 순간마다 이름 모를 ‘천사’들이 나타나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주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한국 청년 수십 명의 ‘아버지’도 됐다. 시속 60㎞밖에 몰랐던 은수도 지구촌 고속도로에서 100㎞를 가뿐하게 달렸다.

임씨를 메신저로 만났다. “결국 무엇을 찾았나요?”라고 물었다. “저와 은수는 청년이 돼서 돌아왔어요. 사람이 가장 힘들어지는 순간은 희망이 사라질 때죠. 세계를 돌아보니 우리나라 같은 나라도 없어요. 우리가 진정 불행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모른다는 사실 같아요.” 정치든 경제든 불안이 가득한 시대, 그의 대답이 청량제처럼 시원했다. 은수가 남북을 가로지르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무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라는 난관이 있어도….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