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전기 요금 폭탄으로 노인 등 서민 고통 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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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은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마음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경로당은 대부분 ‘무더위 쉼터’로 지정됐지만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에 냉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일산 등 대도시 아파트 주민들은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충북 청주시 우암동의 한 경로당은 요즘 오후 1?2시간만 에어컨을 가동한다. 이곳을 찾는 노인 10여명은 선풍기 2대에 의지해 더위를 식힌다. 최영한(83)씨는 “전기요금 걱정에 지난 7월에는 한달 동안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주시 탑동 경로당도 사정도 비슷하다. 김기남(80)할머니는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오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오후에 2?3시간 정도만 가동한다”며 “한여름이 아니어도 한달 평균 전기요금이 4~5만원인데, 요즘은 수돗물을 아끼고 TV를 끄는 방법으로 경로당 운영비를 절약해야 그나마 냉방요금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경로당 한 곳에 지원하는 냉방비는 7~8월 두 달간 총 10만원이다. 경로당 규모에 관계없이 한 달 5만원으로 한 여름을 버텨야 한다. 9월에도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예보됐지만 냉방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지원되는 난방비(월 30만원)와도 크게 차이가 난다.

농촌지역 경로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남 서천군 종천면의 한 경로당도 에어컨 가동을 자제하고 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 이후 잠깐 켰다가 끄기를 반복한다. 이 경로당은 지난 7월 한달 전기요금이 4만원 정도 나왔다. 고순옥(86)할머니는 “전기 요금이 무서워 어지간하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며 “꾹 참고 여름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천군 판교면 복대리 오세종(84)이장은 “에어컨을 오전과 오후 구분 없이 자주 틀면 경로당 전기요금이 수십만원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 주민들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집단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고양시아파트연합회측은 전문가 자문을 거치고 주민 피해 실태를 파악한 뒤 다음달 초 각 아파트단지 대표들과 대책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누진제 완화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고양시아파트연합회는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현실에 맞도록 조정해 최소한 400㎾h 이상 사용 시 누진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수천(72) 고양시아파트연합회 회장은 “가정용 전기를 6단계로 나누고 요금을 단계별로 ㎾h당 60.7원에서 709.5원으로 11.6배 차이 나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폭염 보다 전기요금 누진제가 더 무섭다”며 “주민들이 에어컨 가동을 자제하면서 무더위와 싸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고양·서천·청주=전익진·김방현·최종권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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