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최우석 <편집국장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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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매조지를 잘 하지 않으면 제 값어치가 없다는 뜻이다.
선인들이 이런 말을 쓴 것은 어딘가 허술하고 뒷 매듭이 시원치 않아 좋은 것을 놓치는데 대한 안타까움과 질책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인들의 말씀이 옳지 않은 것이 없지만 요즘은 더욱 가슴 저미도록 와 닿는다.
하기야 이웃 일본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은 「괜찮아요 정신」 때문에 뒤끝이 무르다는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에게 구슬이라 할 것들이 퍽 많다.
우선 경제적으로 3저의 호기를 들 수 있다. 엔고와 유가·금리 인하는 정말 몇십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찬스다. 그러나 이것들도 구슬이지 아직 보배는 아니다.
그것이 구슬로서 끝나느냐, 진짜 보배가 되느냐는 우리하기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구슬 많다는 소리만 요란했지 막상 열심히 꿰는 정성과 열의는 아무래도 미흡한 것 같다.
물론 3저 때문에 수출이 늘고 경기가 올라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에 만족해선 안 된다. 이번을 계기로 그 동안 여러 탈난데를 고치고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여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금년이나 내년 경기가 좀 반짝하는 것에 희희락락해선 또 옛날과 같이 후퇴하게 될 것이다. 3저를 보약으로 삼아 강건한 경제 바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찬스는 일본이 엔고로 조금 주춤해 있는 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본은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기 위한 고통스런 체질 개선을 하고 있는데, 일본의 잠재력이나 적응력으로 보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그 동안 생각만 있었지 막상 염두를 못 냈던 경제 구조 조정을 이참에 해야한다면서 범국민적인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다.
엔고와 유가 인하로 인한 약 10조 엔의 횡재를 푼돈으로 흘리지 않고 국민 경제의 보약으로 써야 한다는데 컨센서스가 모아지고 있다.
엄청난 엔고 차익을 본 전력 업계 등은 그 돈으로 대규모 사업들을 벌일 계획이고, 엄청난 손해를 보는 자동차 업계 등은 원가 절감 등으로 그것을 흡수 할 계획이다.
엔고를 계기로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함으로써 이번을 경제 체질을 단련하는 찬스로 삼고있는 것이다.
일본이 엔고의 시련을 극복하고 일어섰을 때의 국제 경쟁력을 한번 상상해 보라. 구슬을 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3저 차익을 푼돈으로 나눠 쓰는데 너무 급하다.
이미 난 부실이 얼마고, 또 앞으로 날 부실이 얼마인데 그토록 서둘러 3저 차익을 쪼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투자 부진으로 여러 부문에서 공급 애로가 생기고 있어 설비 증강이 급하다. 또 오랜 불황으로 산업 체질도 매우 허약하다.
횡재한 차익은 그걸 보충하는데 써서 장래에 대비해야지 우선 좋다고 푼돈으로 나누면 흔적 없이 흩어져 버린다.
경부고속버스 요금 중 껌 한통 값을 내렸는데 그런 선심이 이참에 과연 필요한가.
선심이나 우선 좋은 것에 너무 신경 쓰다간 또 구슬을 못 꿰고 만다.
3저의 찬스라 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좋게 해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86아시안 게임이나 88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양 대회만 치르면 모든게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양 대회를 치르면서 우리가 잘 궁리하고 잘 흥정하고 죽을 애를 써야 떨어지는 것이 있지 엄벙덤벙하면 손해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양 대회를 계기로 국제 규격의 운동장이라든지, 한강 유람 시설이라든지, 파리 개선문보다 더 큰 상징탑 같은 것을 하나 장만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여유 있을 때의 이야기고 그보다 국민 에너지를 결집, 분출시켜 평소 생각만 있었지 엄두를 못 냈던 큰일을 하나 하는게 더 뜻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질서 의식의 생활화나 대외이 미지의 쇄신도 좋고 서비스 산업의 혁신도 좋으며 국민 화합과 자신감의 회복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86·88이란 구슬 있다는 소리만 요란했지 그걸 어떻게 꿰어 보배로 만드느냐 엔 아직 전망이 안 서있는 것 같다. 국민 경제적인 계산에서 흑자가 날 수 있는 완벽한 청사진과 세부 계획이 필요하다. 양 대회는 우리가 치러보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인 만큼 손익의 진폭도 그만큼 클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또 과학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다.
중지를 모아 가장 돈 안 들이면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행사가 되도록 해야겠다.
지난 삿뽀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선 수지 계산이 빗나가자 포스터도 안 붙이고 안내장 발송도 중단하는 극성을 부렸는데 우리도 그 정도의 각오와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체면 때문에 어름어름 하다간 걷잡을 수 없이 출비가 난다. 부지런히 애를 써도 두 량이 모자라면 손해도 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소중한 구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평화적 정권 교체다. 건국 후 처음 이뤄볼 평화적 정권 교체에 기대와 관심이 부풀어 있다.
우리의 정치 발전이나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꿸 것이냐에 대해선 아직 컨센서스가 모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여야는 물론, 국민적 합의 아래서만 가능하다. 어느 한족의 주장 관철로 될 일이 아니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면 공정한 규칙에 의해 페어 플레이가 이뤄졌다고 수긍, 납득해야 한다.
평화적 정권 교체는 너무나 귀중한 구슬이기 때문에 그걸 꿰는 방법에 대해선 주장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무엇이 평화적 정권 교체이고, 그걸 어떻게 순조롭게 이룰 것이냐에 대해선 지치도록 논의하고 한 발짝씩 생각들을 좁혀가야 할 것이다.
물론 대단히 어렵고 고통스럽겠지만 그만한 댓가를 치러도 좋을 만큼 귀중한 구슬이다.
경제 3저, 86·88양 대회, 평화적 정권 교체의 세가지 구슬을 꿰는 작업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협업과 조화를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적 컨센서스 위에서 인내와 타협, 또 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슬이 서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은 현명한 선인들이 오늘날 우리 세대를 위해 남겨놓은 금낭지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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