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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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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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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

오늘 찾아 올 줄 어찌 알았으리
지난 날 쌓인 회포 말해 보세나
(那知此日來相訪 宿昔幽懷可款言)
-퇴계 이황(1501~1570), 『퇴계집』 중에서

나이 차 뛰어넘은 퇴계와 율곡
시와 술의 만남에 가슴이 먹먹

명종10년(1555) 55세의 퇴계(退溪)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다 병을 핑계로 고향인 안동 퇴계로 내려가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며 제자를 기르고 있었다. 마침 이해에 율곡(栗谷) 이이(1536~1584)는 20세 청년으로 생원시에 장원하여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율곡은 2년 뒤 성주(星州) 목사 노경린의 따님에게 장가들고, 다음해인 1558년 봄 2월에 성주 처가로 근친(覲親)을 간다. 근친을 마치고 강릉 외조모께 인사하러 간다는 핑계로 일부러 안동 퇴계를 거치는 행로를 잡아 도산서당으로 퇴계를 찾아 뵙고 인사 드린다.

퇴계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시로 반기며 진눈깨비가 내린다는 핑계로 율곡을 사흘이나 잡아 놓고 술잔을 마주하여 시를 주고 받으며 학문을 담론한다. 참으로 가슴이 먹먹할 만큼 부러운 장면이다. 퇴계 선생이 58세, 율곡 선생이 23세 때였다. 나이를 뛰어넘는 인연이 지금도 뭉클하다. 올해로 간송미술관에 온 지 딱 50년, 그간 거쳐간 제자가 50여 명이다. 하나같이 보물이다. 시 제목은 ‘이수재 이자 숙헌이 퇴계를 찾아와 비로 3일을 머물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

이수재 이 자 숙헌이 퇴계를 찾아와 비로 3일을 머물다(李秀才珥字叔獻 見訪溪上 雨留三日)
-퇴계 이황

젊은 나이에 이름 떨치는 자네 서울에 있고, 늙어 병 많은 나는 시골에 있네.
오늘 찾아 올 줄 어찌 알았으리, 지난 날 쌓인 회포 말해 보세나.
천재소년 2월 봄에 기쁘게 만나, 3일을 만류하니 정신 통한 듯.
비는 소나기 져 시내에 가득 차고, 눈은 구슬 꽃 만들어 나무 감싼다.
말 빠지는 진흙탕 가는 길 막고, 해 부르는 새소리에 경개 새롭다.
한두 잔 술 내 어찌 덜 채우겠나, 이로부터 나이 잊고 도의로 다시 친하세.

早歲盛名君上國, 暮年多病我荒村.
那知此日來相訪, 宿昔幽懷可款言.
才子欣逢二月春, 挽留三日若通神.
雨垂銀竹?溪足, 雪作瓊花裏樹身.
沒馬泥融行尙阻, 喚晴禽語景?新.
一?再屬吾何淺, 從此忘年義更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