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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NIE] 김영란법, 부패지수 OECD 27위 한국 접대문화 끊기 위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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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내달 28일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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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4건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김영란법은 다음달 28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한국 사회의 접대·청탁 문화가 일소될 수 있을지 거대한 시험에 들어섰다. 부정청탁 등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내수 경기 침체의 가능성, 국회의원 등에 대한 예외 조항 등으로 논란이 여전하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시비가 일단락됐다. 지난해 3월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대한변호사협회·기자협회·사립학교 임직원 등에 의해 제기된 헌법소원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공직자로 한정됐던 법 적용 대상이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직원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과잉 금지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논란이다. 공직자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신고토록 한 것은 일종의 ‘불고지죄’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논란이 됐던 요소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언론인·사립교원의 법 적용에 대해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피해가 광범위하지만 원상 회복이 어렵다”며 “이들은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배우자의 금품수수 신고 의무에 대해서는 “공무원 등에게 배우자를 통해 부적절한 청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할 뿐이다. 연좌제에 해당한다거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개념과 규제 행위 유형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됐다.<중앙일보 7월 29일 “‘언론·교육 영향력 커 청렴성 요청된다’ 7대 2 합헌”>

국회의원 예외 조항 등 논란 여전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최대 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받으면 직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형사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100만원 이하의 경우 직무 연관성이 있으면 과태료(수수금액의 2~5배)를 물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한국 사회는 커다른 변화에 직면했다.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을 넘으면 과태료 대상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은 “대한민국 부정부패사는 앞으로 김영란법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을 정도로 이 법 시행의 여파는 클 것이다.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일반적 관행으로 용인돼 왔던 한국식 접대·청탁 문화가 근절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16년 7월 29일 “‘3·5·10 시대’ 한국식 접대의 종언”>

하지만 김영란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내수경기 위축 등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농·축산 농민과 어민, 외식·유통 업계의 충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들 업종에서는 5만원을 초과하는 선물 수요가 급감해 소비 위축 등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한다.<중앙일보 2016년 7월 29일 “양양 송이, 법 기준 맞추려면 달랑 1개 넣어 선물해야”>

이에 따라 관련 정부 부처의 반발이 심하다. 농림부·해양수산부·산림청·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는 “물가 수준에 맞춰 식사·선물의 규정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식사는 5만원, 선물은 10만원으로 금액 한도를 상향하거나 시행 유예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국회의원에게 허용된 일부 예외 조항은 논란이다. 김영란법은 국회의원이 공익 목적으로 제3자(주로 지역구민)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개정과 폐지,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 또는 건의하는 행위 등은 부정청탁의 예외로 인정했다. 공직자의 자녀·친척 특채와 4촌 이내 친인척 관련 직무를 금지한 ‘이해 충돌 방지’ 조항이 법안 심사 과정에서 빠진 것도 문제다. <중앙일보 2016년 8월 1일 “‘국회의원은 예외’ 고집하는 비뚤어진 정무위”>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34개국 중 27등이 의미하는 건 …

무슨 숫자냐고요? 국제투명성기구는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부패지수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지난해 기준 27위에 올랐답니다. OECD가입국이 모두 34개국이니,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셈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패라는 질병에 감염된 사회라는 점을 알 수 있죠.

흔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과정은 이같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2011년 몇몇 검사들이 누군가로부터 고급승용차나 거액의 금품 등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법적인 공백이 문제가 돼자 김영란법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김영란법은 직무와 관련 있는 행위를 했는 지 여부를 떠나 직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공직자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금품을 주고 받지 않도록 해 오해의 소지를 근본부터 차단하자는 것입니다. 직무와 관련한 사안에선 1원 한 푼이라도 범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준엄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정의 구현≠경제 활성화?
정의 구현=경제 활성화!

이런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법률의 적용 범위에 대한 논란, 그리고 법률의 효용성 여부에 대한 논란입니다. 전자는 김영란법이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점, 그러면서도 국회의원에겐 법 적용이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관련 있죠.

당사자인 사립학교 교직원·언론계에선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 “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하지만 “교육과 언론이 국가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 효과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를 부정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에 비해 국회의원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점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그들의 부패가 몰고올 파급 효과 모두 교원·언론인보다 크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란은 한층 복잡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연간 약 11조6000억 원의 경제 손실이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실제로 농축수산업계와 백화점·호텔·요식업 종사자들은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적지 않은 영향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시행해야 할 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접대·선물 문화가 지나치게 과도했다는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이란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수단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본에는 돈(화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과 같은 부동산도 자본이 될 수 있지요. 공직자의 청렴, 정부·기업 운영의 투명성은 ‘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립니다. 사회적 자본이 발달될수록 정부와 기업의 운영이 투명해져 부패 등으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죠. 쉽게 말하면 사회가 청렴할수록 사회 전체의 재산이 증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한국경제연구원의 셈법에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한 이익(사회적 자본)이 제대로 계산되지 않은 듯 합니다. 당장 감수해야할 손실이 부담스럽지만,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가 한층 건강해질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정의로움을 실현하는 노력이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온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정의를 구현하는 노력이 오히려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도 볼 수 있죠.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공직자에 해당하는 통치자·군인에겐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견리사의(見利思義), 의주리종(義主利從)을 강조했던 것도 유사한 맥락이죠. 오늘에 되새길 법한 구절이 아닐까요.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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