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 확대 등 실질성과 거둬|노 총리 4국 순방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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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신영 국무총리의 이번 서남아-대양주 순방은 인도·호주·뉴질랜드·피지 등 4개 순방 국과의 기존 우호 협력 관계를 재확인하고 나아가 이들 국가와 새로운 정치·외교·경제 협력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83년 버마 아웅산 사건으로 중단됐던 전두환 대통령의 이 지역 순방 계획을 속행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노 총리의 이번 4개국 방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앞으로 세계사의 중심이 되고, 이 같은 태평양시대에 우리가 한 주역이 된다는 정부의 「태평양 구상」에 의한 장기적인 포석의 일환이라고도 풀이될 수 있다.
노 총리는 우선 이번 순방을 통해 4개국으로부터 한반도 내에서 우리 정부의 평화 통일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대북한 외교 우위를 다졌고, 경제적으로도 시장 개방 및 무역 확대의 통로를 넓혔으며 풍부한 천연자원의 공급 선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북한과 등거리 외교를 해온 인도가 우리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을 이해,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주목할만한 성과로 평가될 만하다.
인도는 비동맹 운동의 창시국이자 현재 비동맹 정상 회의 의장국으로 북한의 서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사용돼 왔던 만큼 인도의 이 같은 한국 지지 약속은 한국이 제3세계에서 북한을 제압하고 나아가 국제 회의에서 북한이 소모적인 표 대결로 맞서기 어렵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우리 나라 총리로서 처음 인도를 방문한 사실은 그 동안 한국이 취해 놨던 미일 편중외교 자세를 벗어나 제3세계를 겨냥한 개방 외교의 상징적 수순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인도 측이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그 동안 일본에 대해 과학 기술 이전을 집요하게 요청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노 총리의 방인을 통해 한국을 일본에 대신할 경제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라지브·간디」 수상이 4억 달러 상당의 한국 선박 구매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파라디프 항만 확장 공사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호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한국의 대인 수출은 6억9천만 달러, 수입은 2억1천만 달러다. 인도로서는 이 같은 무역 역조의 개선을 위해서도 양국 경제 관계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경제 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적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 총리의 태평양 연안국 방문은 이 지역에서의 북한의 외교적 침투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북한은 최근 호주와 뉴질랜드에 대해 끈질긴 외교 관계 개선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번에 호주·뉴질랜드·피지 3국은 노 총리에게 한국 정부의 평화 통일노력에의 지지 및 북한과의 공식 외교 단절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옴으로써 남태평양 지역에서의 북한 외교 봉쇄의 방파제를 더욱 굳게 쌓았다.
노 총리는 이번 방문중에 한국이 크게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호주 (한국의 제4위 교역 국) 및 뉴질랜드에 무역 역조 시정을 강력히 촉구, 호주 정부로부터 대한 구매 사절단 파견, 덤핑 방지법 개정 및 항공 협정 체결에의 긍정적 검토 약속을 받아냈으며 뉴질랜드로부터 한국 상품에 대한 시장 개방 약속을 얻어냈다.
뉴질랜드는 또 한국에 대해 어로 지역 조정과 오징어 어획 쿼터 확대 등의 요청을 받고 성의 있는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피지는 1만8천평방km의 국토에 인구 70만명의 소국이지만 이번 노 총리의 방문을 통해 남남 협력 차원의 양국간 우호 관계를 다져 한국의 태평양 진출 거점으로 삼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노 총리의 이번 순방은 지금까지의 총리 외교가 다분히 의전적으로 흘렀던 것과는 달리 외교·경제면의 실질 협의를 통해 실질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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