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부금입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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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학진흥 위해 큰 도움|획일적 규제보다 대학스스로 결정·찬성>
대학에 일정금액 이상의 기부금을 내면 입학 특전을 주는「기부금 입학제」를 허용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자 교육계와 학부모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보편화된 제도로 국고 보조가 전혀 없는 사립대학을 위한 진흥기금으로 마땅히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이는 마치 보결 입학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력이 있는 일부 특수층에 입학 특전을 준다는 것은 교육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많은 교육관계자와 학부모들은 대학입시의 자율권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부금 입학제의 성급한 실시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므로 각계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뒤에 그 실시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의 기부금제도는 당해연도에 기부금을 내고 성적이 나쁜 학생의 입학과 맞바꾸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 대학의 교육적인 이념·목적·방법등에 경의를 표해 재정적인 보탬을 주기 위한 희사라는 것.
평소 대학의 입시자율권을 주장해온 김인회교수 (연세대·교육학) 는 『기부금 입학제란 행정당국이 획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입시 행정권의 자율성이 대학에 주어 졌을때 대학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대학 고유의 문제』라고 전제, 『국고 보조가 전혀 없는 사립대학에서 학교시설보완과 장학금등으로 쓸모 있게 사용될 기부금을 찬성이나 반대의 흑백논리로 보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이어『기부금 입학제도는 영국과 미국의 사립대학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제도로 우리도 결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게 아니다』라며 『사립대학의 경우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규정을 정해 실시토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대학2년생인 딸과 고2의 아들을 두고 있는 학부모 김예숙씨 (45·서울방배동)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학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정원 안에서 특혜 선발함으로써 실력 있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아래 정원외 입학을 시켜 자유경쟁케 한다음 정원 안에서 졸업하게 한다면 사립대학의 재정난을 덜어주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회균등 원칙 어긋나|돈없는 집 자녀의 좌절감등 고려를·반대>
차경수교수 (서울대·교육학)는『대학입시에서 신입생들을 그들의 수학능력이 아닌 돈으로 뽑는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논리적 타당성을 찾을수 없다』 고 전제, 『빈부의 격차가 심한 우리 상황에서 경제적인 우월이 교육기회의 우월로까지 이어진다면 사회적 신의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차교수는 이어『일부 계층의 부가 정당한 수단에 의한 것이냐, 아니냐가 논의되는 이마당에 돈으로 대학입학을 산다면 밤잠 못자면서 공부하는 보통 집안의 자녀들이 설자리는 어디냐』 고 반문했다.
대학원생인 딸과 대학졸업반·중2의 아들을 두고 있는 학부모 박맹호씨(52·민음사대표)는『각고의 노력과 공정한 경쟁에 의해 구성되는 대학사회는 민족의 꿈이자 요람인데, 여기에 기부금 입학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나쁜 영향을 전사회에 끼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마땅히 통과해야할 경쟁의 원칙을 기부금이라는 특혜로「무사통과」한 학생들을 과연 학교에서 사회의 당당한 일꾼으로 교육시킬 수 있으며 다른 젊은이들에게 주는 좌절감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사학교육재원 마련을 기부금 제도라면 개인이나 기업의 이름으로 연구소나 장학제도를 만들게 해 대학에서 기부자의 명예를 존중해주며 활용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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