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말고 다른 방법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여야가 나름대로의 「정치일정」을 확정 발표함으로써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여야의 인식이 일치한 것은 그나마 진보한 것이지만 그시기에 대한 이견의 폭은 여전히 크기만 하다.
「86년 개헌, 87년 대통령 선거」를 요구하고 있는 야당에 대해, 민정당은 중앙위전체회의의 결의를 통해 「88년 대통령 선거, 89년 개헌」이란 정치일정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임을 선언했다.
야당은 이른바 난국타개 6대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민의 저항」과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야권의 후퇴가 없는 한 대 타협은 불가능해졌다」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정기국회이래 경쟁으로만 치달아온 정국의 추이로 미루어 볼 때 여야의 시각차가 이처럼 크리라는 것은 당초 짐작되던 일이었다.
각자 주장의 강도에다 상호불신의 농도까지를 계산에 넣는다면 타협의 실마리를 쉽사리 찾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의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고싶지는 않다. 조정과정의 민주성 여부에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야가 각기 잡다한 이견을 하나로 공식화한 것은 「돌파구」로서의 구실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24」 청와대 회담 후 88년 선거로 출범할 정부의 성격에 대한 정부·여당 안의 혼선은 「89년 개헌」을 공약하는 후보 중에서 뽑는다는 선에서 마무리지어졌다. 후보경선 규정을 신설하고 당내에 「후보자 선관위」를 설치키로 한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야권 또한 여러 갈래로 흩어져있던 시국대처방안을 일단 하나로 묶었다. 현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을 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는 새로 제정된 헌법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요컨대 그 골자다.
정국이 이제 새 국면을 맞았다는 것은 평행선만을 그어온 양극의 대치가 비로소 국회로 수렴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대권의 향방이 달린 문제를 놓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양보를 할 기미는 도무지 없다. 절대 호헌을 주장하던, 여당이 89년 개헌까지 감수했으면 더 이상 내놓을 카드는 없다는 입장이라면 야당은 국내외의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지금이야말로 「민주화 일정」을 강력히 밀고 나가야할 호기라는 판단을 하고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야의 상황판단이 각기 어떤 것을 근거로 했건 간에 타협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벼랑에 선 정국이 서로의 아집에만 사로잡혀 상대방을 밀어붙이고 완승만을 기하려든다면 다음에 올 것은 파국뿐이다.
정치권이 입을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최대의 피해자가 국민이며 나라 전체일 것은 뻔한 일이다.
그 동안의 가파른 대결에서 여야간에 얻은 소득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따져볼 때도 되었다. 힘에는 한계가 있고 완승전략이란 오히려 완패로도 이어지는 리스크가 있다는 교훈을 거기서 얻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여야간에 서로의 주장이 선명하게 부각된 것을 계기로 극적인 타협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실기를 하면 공생의 방안을 찾는 일은 한층 요원해질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여야간에 파국을 원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파국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금주를 고비로 총무회담 등 여야간에 공식적인 대화노력이 재개될 전망이다. 「정치의 장」으로서 국회의 정상화와 국회에서의 대화는 우선 여야간의 날카로운 견해차를 좁히는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의 난국은 궁극적으로 정치권의 대립에서 연유한다. 정치권에 책임이 있는 이상 그 해결도 정치권이 해야한다.
이제 극한적인 말씨름은 자제하고 흔쾌하게 대화와 타협의 장에 나서야한다. 국민들은 타협을 통해 난국을 풀어 가는 정치인의 모습을 간절하게 보고싶어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