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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사유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몸을 사유하라

지금 가장 핫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김중혁이 새 책 『바디무빙』을 냈다. 그와 나눈 몸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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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진행자, 영화 평론가, 음악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동인문학상 수상자. 이게 다 김중혁의 수식어다. 두문불출 처박혀 글만 쓰다 작품으로 ‘짜잔’ 하는 내향형 작가가 있다면, 김중혁은 반대다. 늘 나와서 사람을 만나고, 매주, 매월 어딘가에 각양각색의 주제로 부지런히 기고를 하며, 라디오와 방송에도 출연한다.

“소설은 시간 날 때 가끔 쓴다”는 농담이 괜한 말이 아닐 정도. 이처럼 세상 다반사에 전방위적 참견을 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몸’을 주제로 에세이를 엮었다.

김중혁은 이를테면 영화 ‘그래비티’를 보며 샌드라 불럭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꽂힌다. “스톤 박사 역을 맡은 샌드라 불럭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보자. 사고로 딸을 잃고 부유하듯 살아가던 그녀이다.

그녀는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그냥 운전만 했다’고 말하지만, 몸은 그게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두 다리로 삶의 지평에 우뚝 서기 위해 남몰래 뛰고 걸었을 시간들을, 그녀의 몸은 상상하게 해준다.

김중혁은 “길을 가다 가끔 사람들의 몸을 몰래 훔쳐보며 그 사람의 몸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부지런히 ‘보디’를 ‘무빙’하며 뭔가에 참견 중일 그와 신간 『바디무빙』에 관해 인터뷰를 나눴다.

‘바디무빙’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는

바디무빙이라는 단어는 좋아하는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스’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온 거다. 잡지 『씨네 21』에 연재할 때는 ‘바디 무비’라고 했었고, 책으로 낼 때는 원래 생각한 ‘바디무빙’이 됐다. 의미는 간단하다. 몸은 늘 움직인다는 것. 인간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움직인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언제나 움직이는 몸의 이야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바디 무빙’만큼 잘 어울리는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몸에 대한 이야기를 엮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한다. 선수들의 몸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우아한 동작들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 대단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몸이 말하는 언어, 몸이 품고 있는 의미를 글로써보고 싶었다. 수영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몸의 균형, 점점 나빠지는 시력에 대한 이야기 등을 영화 이야기와 함께 써보고 싶었다.

“삶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김중혁의 삶을 말해주는 몸의 특징이 있다면

손가락이 무척 긴 편이다. 어릴 때는 콤플렉스였다. 지금은 살이 쪄서 예전만 못하지만 어렸을 때는 ‘여자 손가락’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게으른 손’이라든가 ‘예술가가 될 손’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지금 보면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건가 싶다.

작가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몸은 ‘누구’의 ‘어떤’ 몸인가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몸이 생각난다.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니 그레이프(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 분)와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 분)의 어머니인 보니 그레이프(다렌 케이츠 분)는 엄청나게 뚱뚱하다. 계단을 오르면 집이 흔들릴 정도로.

그런 어머니가 집에서 숨졌을 때 어니와 길버트는 집을 불태우기로 마음먹는다. 말하자면 어머니를 집과 함께 화장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만 보면 늘 눈물이 난다. 특정한 몸이 생각난다기보다 모든 사람의 몸이 조금씩 떠오른다.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다른 몸을 지니고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모두 다른 동작을 취할까. 신비롭다.

요즘처럼 ‘몸’이 화두에 오른 적이 없는 것 같다. SNS에 각종 몸 사진이 전시되듯 펼쳐지고, 웰빙 음식, 몸 만드는 운동 등 우리가 몸에 지배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좋은’ 몸이란 결정돼 있는 것 같고, 누구나 그런 몸을 갖고 싶어 하니까.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나

난 몸을 긍정하자는 의미로 『바디무빙』을 썼다. 다이어트를 하는 마음도 이해하고, 성형 수술을 하는 몸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몸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좋겠다. 모든 몸에는 이유가 있다. 날씬한 몸, 예쁜 얼굴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특별한 몸과 얼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들여다보면 좋겠다.

나를 유난히 끌어당기는 몸의 어떤 부위가 있다면

사람의 몸을 볼 때, 난 자세를 가장 많이 본다. 거기에는 거만한 몸이 있고, 내성적인 몸이 있고, 당당한 몸이 있고, 귀여운 몸이 있다. 동작과 자세로 그 사람의 생활과 성격을 상상하는 게 재미있다.

뚱뚱하거나 말랐거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몸을 볼 때 직관적으로 내리는 분류는 대충 두 가지 범주에서 판가름 나곤 한다. 김중혁 작가는 몸을 볼 때 어떻게 분류하나

몸은 절대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같은 몸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김중혁 작가에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영화를 보는 게 점점 힘이 든다. 영화 속 액션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주인공이 물에 빠지면 나도 팔다리를 휘젓고, 주인공이 하늘을 날면 나도 모르게 내 팔을 벌리는 장면을 상상한다. 나도 모르게 몸이 마구 반응하는 거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몹시 피곤해진다.

어떤 소설가보다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고, 다방면의 글을 쓴다. 소설 쓸 때와 에세이를 쓸 때의 나는 어떻게 다른가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 에세이는 최대한 편안하게 말하듯 쓴다. 음악을 들으면서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휴대전화로 쓰기도 한다. 소설은 아무래도 집중력이 필요하다. 음악은 절대 안 듣고, 커튼을 치고, 휴대전화기도 꺼둔다.

김중혁에게 ‘몸’이란

인간의 삶이 누적되어 있는 나이테 같은 것.

『바디무빙』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나

자신의 몸을 한번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모든 살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상처에는 이유가 있다.

곧 소설도 출간 예정이라고 들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우주 비행사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이야기다. 초고는 끝냈고, 수정을 해야 하는데…, 8월에 출간하는 게 목표다. 그때 또 보자.

‘몸’에 관한 에세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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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어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 김경주 시인이 어디에도 없는 ‘고품격’ 몸 에세이를 완성했다. 저자는 뺨부터 눈동자, 잇몸, 날개 뼈, 쇄골, 핏줄, 달팽이관, 인중, 눈물샘 그리고 그림자 등까지 모두 마흔여섯 개 신체 부위를 깊이 응시하고 은밀하게 더듬는다. “몽상하는 눈동자는 몸을 배웅한다. 마치 불면이란 잠들지 않기 위해 눈동자가 몸 곳곳으로 그 시력을 배달하는 일이듯, 몸에게 그 시간을 허락해주도록 눈동자는 특별한 의문과 꿈을 제공했다.” 신체 부분 부분이 각자의 인격으로 존재하고 서로 관계하는 듯한 서술이 곱씹을수록 놀랍다. 실로 몸에 대한 가장 전위적이고 예술적인 텍스트다. 김경주 지음, 문학동네, 1만6000원

2 미주알고주알

‘시인의 몸 감성사전’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16개 챕터로 이뤄져 각각 몸의 부위에 대한 사전적 정의로 포문을 연 후,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 몸이 뿜어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것은 독서 노트였다가 일기였다가 시작 메모, 혹은 산문시였다가 그림이었다가 하며 자유롭게 펼쳐진다. “무심한 손가락이 잊혀진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수가 있다. 천관녀 집을 찾아간 것이 말이 아니라 손가락이었다면 김유신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을까.”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안쪽에 있는 것, 그것이 안심安心이다.” 이처럼 지극히 익숙한 몸의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와 사유들이 마구 교차되며 고조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권혁융 지음, 난다, 1만5000원

3 인체재활용

김중혁 작가가 『바디무빙』을 쓰게 된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꼽은 책.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연구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취재한 결과물이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메리 로치’가 시체와 인체, 영혼에 대한 고문서부터 최근 저잣거리에 나도는 뜬소문까지 모든 정보를 모아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시체 머리만 잘라내어 성형 수술 실습용으로 이용한다든가, 인체에 무해한 총기를 만들기 위해 다리만 잘라내어 관통 실험에 사용하고, 과거에는 자신의 몸을 꿀에 절여 약으로 내놓기도 했다는 등등의 실제 사실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오싹하다. 메리 로치 지음, 권루시안, 1만5000원

4 육체 탐구 생활

자칭 집도 절도 돈도 백도 없는 도시 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가난했지만 영혼은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자신의 육체 곳곳에 깃든 날것의 기억들을 파헤쳐간다. “내가 본 육신 중 가장 차가운 것은 내 아버지의 것이었다”로 시작되는 그녀의 글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피식 웃기다가도 끝내 읽는 이를 울리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남의 몸에 깃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이 내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팔 줄이야. 김현진, 박하, 1만3000원

기획_성영주 | 사진_한정구
여성중앙 2016.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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