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의원 불체포특권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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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민주당 정대철(鄭大哲)대표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보면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임시국회 회기 중이기 때문에 鄭대표를 구속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가 동의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힘을 낼 생각이 전혀 없다. 지난 6월 접수된 박주선(朴柱宣).박명환(朴明煥)의원 체포동의안도 그냥 잠자고 있다.

7월에 이어 8월 임시국회가 열리고, 9월엔 정기국회가 시작되니까 이변이 없는 한 鄭대표는 올해 말까지 구속되지 않을 것 같다. 두 朴의원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鄭대표가 직위를 이용해 관련자 진술의 번복을 유도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원이 아니었던들 그는 진작 구속됐을 것이고 굿모닝시티 사건의 수사도 더 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 수사·재판지연 '가짜의원' 못막아

그렇다면 이런 경우 불체포 특권으로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불체포 특권은 행정부의 권력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해 국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의원 범죄를 보호하거나 책임 면제를 해주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사례를 보면 불체포 특권이 범법 의원의 보호막처럼 변질되는 감이 있다.

과거 군사 독재정권 때라면 국회와 의원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불체포 특권은 꼭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행정부가 국회나 의원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아직도 표적수사니 '정치적 음모'니 하는 주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검찰도 옛날 검찰은 아닌 것 같고 정치탄압이 가능한 사회 환경도 아닌 것 같다. 이처럼 불체포 특권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자위용(自衛用)이란 본래의 취지는 많이 퇴색된 게 사실이다. 그보다는 의원 범죄의 보호용 또는 수사 지연의 도구 등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현재 24명의 의원이 재판에 걸려 있지만 구속된 사람은 단 한명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구속돼 있는 김방림(金芳林)의원도 2000년 10월 5천만원을 먹었다는 혐의를 받고도 오랜 기간 검찰 소환에 불응하다가 다른 돈을 받은 혐의가 새로 드러나 구속된 것은 올 2월이었다.

이번에 문제된 鄭대표도 이미 5년 전에 4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계속 의원직을 유지하고 당 대표에까지 올랐다.

의원의 경우 유죄가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의원들은 갖은 핑계로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재판을 지연시킨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의원 임기를 잘도 누린다.

결과적으로 '가짜 의원'이 몇년씩 의원 노릇을 하고, 세비를 타먹고, 정치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자주 나온다. 현 국회의 임기도 이제 9개월이 남았으니 유죄가 확실한 의원이라도 요리조리 빠져 수사와 재판을 9개월만 늦추면 임기를 무난히 마칠 수도 있다.

이런 부당하고 황당한 일을 그냥 놔둬야 할까. 이런 부당하고 황당한 일을 만드는 유력한 도구가 되고 있는 불체포 특권을 그냥 둬야 할까.

*** 악용 방지대책 반드시 마련돼야

문제는 불체포 특권이 헌법사항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 하나로 개헌까지 하자고 하긴 어렵다. 앞으로 개헌을 논의할 경우 반드시 개정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쁜 정권'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폐지하진 않더라도 그것이 의원 범죄의 보호용이 안되게 하는 장치를 꼭 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헌 전이라도 이 특권의 악용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젠가 한 판사가 제의한 것처럼 체포동의안의 국회 처리 시한을 1주일 또는 열흘로 못박고 국회가 그 기간 내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구속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든가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악용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돈을 먹고도 소환에 불응하거나 국회에 숨어 구속을 모면하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여론이 일어나야 한다. 내년 17대 국회 개회식에서 불체포 특권 자진 포기 집단선서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은 어떨까.

특권은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만 누려야 한다. 의원들은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규정한 헌법 44, 45조 바로 다음의 46조가 무엇을 규정하고 있는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