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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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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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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 기자

어린 시절, 지금은 철거된 삼일고가도로를 탈 때마다 궁금했다. 평화시장을 지날 즈음 마주치는 대형 의류 광고판 속 모델들은 왜 죄다 백인 남녀일까.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노골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곤 했는데 말이다. 외국인 모델이 입으면 같은 옷이 더 멋있어지는 걸까.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을 넘기고, 세계가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2016년 8월이건만, ‘메이드 인 코리아’ 스타킹이며 내복 포장지엔 여전히 이름 모를 백인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 안의 외국인 콤플렉스가 이런 광고들에 투영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우린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퍽이나 민감하다. 아, 외국인이라기보단 영어권 백인이라고 특정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해당 외국인이 하버드·옥스퍼드 등 엘리트 출신이라면 민감도는 수직 상승. 뉴욕타임스 등 유수 해외 언론이 한국을 다루는 보도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각 스님이 페이스북에서 조계종을 비판한 글이 뜨거운 논란을 지핀 것도 이런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각 스님은 미국인에다 ‘푸른 눈의 수행자’이며 하버드대 학위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이런 스님이 한국과의 25년 인연을 끊겠다고 하고, “기복=$”이라며 한국의 불교 문화를 비판했다. 정작 본인은 “내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 때문이라며 자신의 뜻이 와전됐다고 했지만 논란은 일파만파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불교뿐 아니라 한국 종교가 기복신앙의 색이 짙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강남의 사찰이며 여의도 대형 교회의 1년 수입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뛰어넘는다. 그런 지적을 현각 스님이 했다고 해서 한국 불교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마른 들에 불 놓은 듯 일어난다는 건 이상하고 착잡하다. 논란의 내용을 떠나,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퍼붓는 양상으로 여론이 전개되는 방식이 불편한 이유다.

흥미로운 건 정작 외국인의 시선엔 민감하면서 외국인을 한국 사회의 일부로 포용하는 데는 인색한 우리 안의 이중적 폐쇄성이다. 현각 스님이 삭제한 원문엔 “외국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품)”이란 말이 있었다. 비단 조계종만의 문제는 아닐 터다. 우리 안의 문제를 스스로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면서, 외국인이라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문제가 드러나면 호들갑을 떠는 경향은 우리 사회 전반에 녹아 있다. 결국 우리가 아직도 자존심만 강하고 자존감은 낮다는 방증 아닐까.

전수진 정치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