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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왕위를 계승할 왕자에게는 반드시 생모의 젖을 먹여 키우게 한 나라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막강한 도시국가였던 스파르타가 그랬다. 그 시절에도 「송아지는 쇠젖, 아기는 엄마 젖」 의 섭리를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가 가까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조제분유의 인기가 상당하다니 어이없다. 조제분유가 마치 영리하고 건강한 아기로 키우기 위한 특별식 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고 있다니….
해방후 거세게 밀려들어와 각광받던 (?) 서구식 생활풍조의 하나가 분유 먹이기다.
뭇어머니들이 너도나도 구할 수만 있다면 조제분유를 먹이고자 했으니까….
요즘 우유가 남아돌아 걱정이란 소식을 들으면 참 답답하다. 엄마 젖을 떼고 난 이후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우유를 많이 마시면 건강에도 좋고 우유소비도 늘게 아닌가. 엉뚱하게도 엄마 젖 먹을 나이엔 분유를 먹고 정작 우유를 마셔야 좋을 나이엔 안 마시니 뭐가 단단히 잘못됐다.
원래 조제분유는 여성들의 취업기회가 많아진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직장일과 육아를 동시에 맡아야했던 직장여성들을 위해 개발된 모유대체식품. 196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직장여성뿐 아니라 가정주부들도 분유를 가장 좋은 영·유아식품으로 알고 널리 애용했다. 그러나 모유의 도전받을수 없는 우수성이 의학적·과학적으로, 또 뭇어머니들의 경험을 통해 입증되면서 조제분유의 인기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모유로 아기를 키우는 추세다. 동양권인 일본에서도 요즘은 대부분의 아기들이 엄마 젖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에 나가지 않는 젊은 엄마들조차 젖먹이는 예가 너무 드물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지경이다. 모유에는 아기에게 꼭 필요한 기초영양뿐 아니라 연약한 아기를 무서운 질병과 알레르기성 질환들로부터 보호하는 요소가 있는 것쯤은 알고도 남으련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신이 인간에게 베푼 최상의 자연식을 왜 마다하는가?
최근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이 마련한 공청회에서 나는 또 한번 놀랐다. 분유 등 모유대체식품 선풍에 제동을 걸고자 마련된 이날 공청회에서 정말 심각한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우리나라 여고생과 여대생의 상당수가 앞으로 아기를 낳으면 조제분유로 기르겠다고 하고 모유를 먹이겠다는 여학생들조차 얼마동안 모유를 먹이는 게 바람직한가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국민보건을 위해 훌륭한 전문의를 양성하고 좋은 약을 생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일찍부터 학교에서 엄마젖 먹이기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인 국민보건향상 방법이 아닐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한 어머니들이 엄마 젖을 제쳐놓고 조제분유를 먹이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 소아과전문의인 나는 아기들을 돌보기에 앞서 엄마들의 「분유병」부터 고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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