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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에 살다] (26) 돌아온 사나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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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고 산악부 OB회인 마운틴빌라의 장경덕 대장과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은 돌아온 토왕폭 사나이들이다.

1978년 토왕폭을 며칠 앞뒤로 등반했던 두 리더는 79년 2월 각자 등반대를 이끌고 다시 토왕골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1년 전처럼 등반시기가 겹쳤다.

마운틴빌라는 78년 1월 토왕폭 도전 때 최영규.김기환 대원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던 토왕폭 빙벽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이번에는 우측 벽을 노리고 다시 토왕골로 들어온 것이다. 당시 최.김 대원은 토왕폭 상단의 정상을 불과 7m 가량 남겨두고 후퇴했었다.

장경덕 대장은 79년 2월 3일 김상택.김상규.이지원.송원기.이해관.신용민.김명선 대원과 함께 서울 동마장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10년 만의 폭설로 설악동에는 어른 키가 잠길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1백80cm는 쌓였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토왕골로 들어서니 그들이 오르려는 토왕폭 우측 벽에는 뜻밖에 개미처럼 보이는 산꾼들이 붙어 있었다.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이 백승기.유한규 대원과 함께 78년에 이어 다시 빌라팀의 목표인 토왕폭 우측 벽을 등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악우회의 세 명장은 우측 벽 하단의 정상을 40여m 앞두고 맹렬한 기세로 오르고 있었다. 장대장이 보기에 악우회팀은 4~5일 전에 등반을 시작한 것 같았다.

토왕폭의 빙벽과는 달리 암벽인 우측 벽은 팀 간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다면 여러 팀이 동시에 붙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장대장은 앞에서 오르고 있는 악우회팀에 개의치 않고 등반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장대장이 택한 루트는 토왕성 빙벽과 악우회팀이 등반하고 있는 코스 사이의 중간 위치에서 하늘을 향해 곧장 뻗어 있었다. 마침 토왕폭에는 서울의 서강대 산악부팀도 등반 중이었다.

그래서 세팀의 토왕폭 사나이들은 자신들이 오르고 있는 얼음과 눈과 바위만으로 이뤄진 수직세계를 알프스의 북벽이라고 생각하며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빌라팀은 2월 5일부터 본 등반에 들어갔다. 빌라팀이 자랑하는 톱장이 김성택 대원이 송원기 대원을 데리고 이날 50여m까지 올랐다. 그날 두 대원은 70여m 아래쪽에 설치된 베이스캠프로 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비박(야외에서 텐트 없이 잠자는 것)했다.

이들이 밤을 보내기로 한 곳은 엉덩이도 편안하게 붙일 바위턱 하나 튀어나와 있지 않은 바위 절벽의 한 가운데였다. 30분 정도만 내려가면 따뜻한 텐트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거 북벽과 같은 해외 거벽 원정을 위한 훈련으로 비박을 택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낭만을 선택한 것이다.

선배인 김대원은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25세의 예비의사이고, 송대원은 22세의 대학 3년생이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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