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리우2016] 주저앉은 남편 일으켰다, 함께 바벨 잡은 아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운동 선수에게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은 꿈의 무대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기량이 뛰어나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6일 개막하는 리우 올림픽에는 국내 선수 중엔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해 화제다. 여자 역도 53㎏급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와 남자 69㎏급 원정식(26·고양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기사 이미지

각각 한 차례씩 올림픽에 출전했던 윤진희·원정식 부부는 리우 에서 국내 최초로 부부 동반 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달 남편 원정식(왼쪽)이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 윤진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다. 뽀글뽀글한 단발머리를 한 채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가 넘는 역기를 들어올렸다. 여자 역도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윤진희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다.

원정식·윤진희, 한국 첫 부부 출전
베이징 은메달 딴 아내 결혼 뒤 은퇴
두 아이 키우며 평범한 주부 생활
인천 아시안게임서 무릎 다친 남편
“같이 하면 힘 날 것 같아” 복귀 제안
힘든 재활 견디고 나란히 태극마크

하지만 윤진희는 4년 뒤 런던 올림픽을 몇 개월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로서의 삶 대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윤진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2011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이자 네 살 연하인 후배 선수 원정식이었다. 강원도 원주 출신인 두 사람은 태릉선수촌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다. 윤진희는 “남편은 나를 항상 웃게 해주는 자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원정식 혼자 출전해 7위를 차지했다. 첫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던 원정식은 아내의 내조 속에 더욱 기량을 끌어올렸다. 2013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에서 각각 3관왕과 2관왕에 올랐다. 최종근 고양시청 코치는 “아내가 선수 출신이다 보니 음식 관리를 잘 해줬다. 운동 외적인 부분에서도 편하게 해준 것으로 안다. 그 결과 런던 올림픽 이후 기록이 세계 정상급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두 사람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원정식은 대회 전 “아내가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아내에게 메달을 선물하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용상 경기 도중 왼 무릎 힘줄이 끊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윤진희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남편의 뜻하지 않은 부상은 부부에게 새로운 계기가 됐다. 아내 윤진희 역시 다시 바벨을 들기로 한 것이다. 윤진희는 “부상을 당했던 남편이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면 훨씬 힘이 날 것 같다’며 운동을 다시 하자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남편 원정식의 재활 못지 않게 아내 윤진희의 복귀도 쉽지 않았다. 두 딸을 키우면서 3년 동안 바벨을 놓은 탓에 근육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힘겨운 훈련을 이겨냈다. 그리고 2015년 나란히 선발전을 거쳐 태극마크를 달았고, 리우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관련 기사[리우2016] 리우의 스타 18세 난민 소녀 “물속에선 전쟁·차별 없어요”



원정식과 윤진희가 메달을 따낼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원정식은 지난해 11월 세계선수권 인상에서 15위에 올랐으나 용상에서는 실격당했다. 윤진희도 합계 188㎏을 들어 16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예전의 기량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각국의 도핑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 선수들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종근 코치는 “기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면 깜짝 메달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윤진희는 “다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나와 남편 모두 큰 영광을 안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