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386이 수수설 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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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에 한바탕 권력싸움이 붙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김원기(金元基)고문 등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이 굿모닝시티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누구의 얘기를 듣고 쓴 것인가가 윤곽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권은 꾸준히 발설자를 추적해 왔다. 청와대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은 보도 다음날 음모 가능성을 언급했고, 청와대 일각에선 정대철(鄭大哲)대표 주변 인물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여권이 추적에 나선 배경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명단을 흘린 사람 또는 세력이 있을 경우 그대로 넘기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신주류 측은 20일 발설자로 청와대 내 386으로 분류되는 한 비서관을 지목했다. 해당 비서관도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그 문제를 놓고 전화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내 얘기를 갖고 기사를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더 소상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기분이 좋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고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끊기 전 "동아일보 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느냐, 아니면 당신이 전화를 걸었느냐"는 질문에 "전화가 걸려왔다"라고만 했다. 이 말이 사실일 경우 그는 적어도 최초의 발설자는 아닐 수도 있다. 이는 "386측근들이 신주류를 죽이기 위해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명단을 흘렸다"는 민주당 신주류 측 주장과 배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신주류 측 핵심인사는 이날 "청와대 안팎의 핵심 386측근 몇 명이 조율해 명단을 흘린 것으로 안다"고 단언했다. 그는 "조사를 벌인 청와대도 지난 주말 발설자를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386측근들이 굿모닝시티 관련 정보를 흘린 것은 신당이 지지부진한 데다 기존 민주당 간판으로는 총선승리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결국 이들을 정리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의도에서 명단의 유출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이날 밤 "동아일보 기자와 통화를 하면서 굿모닝시티와 관련된 인사들의 이름을 말한 386비서관으로부터 '통화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관련 내용도 일부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종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처리수준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번 일이 386측근들의 친위 쿠데타라는 분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청와대로서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치적 배경에 무게를 두는 민주당 신주류 측은 일부 검찰 관계자들과 해당 비서관이 친분이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지난번 검찰인사에서 이 같은 관계가 반영됐고 이번 사건 처리에서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한 신주류 측 인사는 "굿모닝 수사팀에도 관련자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까지 말했다.

민주당 내 신주류들은 盧대통령의 386측근 중 한 사람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최근 발언도 이 같은 흐름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있다.

安부소장은 월간중앙 8월호 인터뷰에서 "집권당의 사무총장을 해보고 싶다. JP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공화당 의장을 했다"며 "(盧대통령이 퇴임하는) 40대 후반쯤 남의 욕이나 하고 사는 그런 무기력한 인간이 되기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 신주류론은 세대교체와 역사적 주역의 교체를 의미한다"며 세대교체론을 강조했다. 신주류 측 한 인사는 "단순히 개인의 희망을 말한 것 같지는 않으며, 최근 정국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때 발설 의혹을 받았던 정대철 대표 측은 "사실이라면 그들이 신주류 측 중진들을 모두 제거 대상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라며 흥분하는 분위기다. 한 측근은 "당초엔 반신반의하던 鄭대표도 점차 음모설에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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