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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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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형사소추상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즉심제도의 운영을 대법원이 다소나마 개선키로 한 것은 장차 전면개선을 위한 첫걸음으로 보고싶다. 지난57년부터 실시해 오고있는 현행 즉심제는 그 운용에 있어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인들이 많아 개선을 촉구하는 요청들이 있어왔고 즉심제도 자체를 폐지해야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즉심제도는 한마디로 「심리없는 재판」 이나 다를 바 없다. 형사피고인을 검사가 아닌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을 청구하면 판사는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선고한다.
즉결심판절차법은 판사는 피고인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도록 되어있으나 기회가 주어지는 예는 거의 없고 대부분 서면심리만으로 그친다.
이 경우 경찰조서가 유일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런 계제에 자백의 타당성이나 임의성여부는 거론할 거리도 못된다.
즉심에 넘겨지는 사건이 연간 60여만 건으로 하루에도 2천여 건을 처리해야하는데도 즉결재판소는 몇 군데 지나지 않았다. 판사 1명이 단시간안에 수백건을 처리하자면 변명의 기회는커녕 서류심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러명의 피고인을 세워놓고 단숨에 형을 선고하는 것이 오늘의 즉심이다.
그래서 흔히 「1분 재판」을 받기 위해 12시간을 구속상태에서 곤욕을 치른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1분 재판」 을 받기 위해 파출소로 연행돼 경찰서 보호실이나 대기실에 장시간 수감상태에 있는 것은 엄연히 구금이다. 법관의 영장도 없이 구속이 당연한 것처럼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주거가 확실하고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신분이 확실한 회사원이, 그것도 벌금 몇 푼만 물면 되는 경미한 경범죄처벌법을 어겼다하여 중죄인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더구나 즉결심판소의 법정구조도 방청석을 포함해 재판당사자들과 관계인물의 편익을 도모하는 시설도 없어 허울뿐인 공개재판이 진행되고있다.
어쩌다가 즉결심판에 넘겨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 치고 『이래도 법치주의가 살아있는가』 하고 의아심을 품어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제도와 운용의 난맥상을 조금이라도 시정하기 위해 교통범칙금 미납자 등은 일반법원에서도 심판을 받게 하고 방청석을 갖추고 현행보다 2시간 일찍 개정해 경찰서 유치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이 정도의 개선으로 앞서 지적한 문제점이 해소되리라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해 만든 간이재판제도가 오히려 불편하게 하고 인권이 무시되어 취지의 본말이 전도되지 않게끔 하자면 보다 큰 수술이 단행되어야한다. 임의출석과 궐석심판대상 폭을 보다 확대하고 즉결심판소의 수도 늘리고 현재의 졸속 심리방식을 고쳐나가야 마땅하다.
코걸이 귀걸이식의 법 적용여지가 다분히 있는 경범법 운용도 염격히 해야한다. 또 즉심에 넘겨지기 전에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터 주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즉심제 개선이 전면개선을 위한 첫걸음임을 강조한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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