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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국 보란 듯 이용호 손잡은 왕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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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용호 외무상(오른쪽)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25일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양국 외교장관회담을 했다. 북·중은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2년 만에 양자회담을 했다. [비엔티안 AP=뉴시스]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25일 오전 11시59분(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립컨벤션센터 1층 15호 회담장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거렸다. 약 2분 뒤 나타난 사람은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었다. 왕 부장은 이용호를 보자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회담장 안으로 안내했다. 회담장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두 사람 모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북·중 2년 만에 외교수장 회담
왕이, 문 앞까지 나와 기다려
55분 만남 뒤엔 “회담 좋았다”
한국 언론에 이례적 회담 공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밝혀

북·중 외교수장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2년 만에 만나 손을 잡았다. 라오스에서 북·중이 두드러진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하루 전인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해 쿤밍을 경유하는 동방항공 노선을 타고 6시간30분 동안 함께 비행해 라오스에 도착했다. 숙소도 같은 호텔에 잡았다.

왕 부장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지난 5월 8일 외무상) 취임을 축하한다”며 “중·조선 관계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뒤 “공동 관심사로 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용호는 “왕 부장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위해 축전을 보내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해 마지않는다”며 “앞으로 조·중 친선을 위해 적극 협력하는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화답했다.

축전이란 지난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걸 뜻한다. 왕 부장이 먼저 회담장에 가서 기다리고, 모두발언을 먼저 한 것은 주최 측이 북한이 아닌 중국이란 뜻이다.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회담을 먼저 원한 것이 중국이란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회담은 낮 12시1분부터 12시56분까지 55분 동안 진행됐다. 왕 부장은 회담 뒤 기자들이 “회담이 어땠느냐”고 묻자 “좋았다”고 답했다.

전날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을 두고 “한국 측이 신뢰를 훼손했다”며 노골적 불만을 표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북·중은 모두 25일 회담을 대대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측은 회담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국 취재진에게 다가오더니 “카메라를 갖고 있는가. 회담장 안에 들어갈 생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양측의 회담 앞머리를 취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이어 영상취재기자 한 명, 사진취재기자 한 명을 회담장에 들여보내줬다. 제3국인 한국 취재진이 북·중 회담장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 중국에 남중국해 중립 입장 알려야”

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담이 끝난 뒤 이용호를 한국 취재진이 따라가자 북한 대표단 중 한 명이 멈춰서더니 갑자기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는 “조·중 두 나라 외무상 간 접촉은 두 나라 사이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두 나라 외무상들은 조·중 쌍무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직함을 묻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단 대변인입니다”라고 답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날 북·중 외교수장이 보인 모습은 일시적 밀월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 남중국해 패소 판결 문제 등이 겹치면서 중국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단기적으로나마 커졌고, 북한도 대북제재 국면에서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중국에 기댈 필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정부는 한·중 관계가 사드로 나빠지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겠느냐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며 “남중국해 문제에선 한국이 미국 쪽에 기울지 않고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계속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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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북·중 간 밀착행보 속에서도 왕 부장은 이용호 앞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명확히 했다. 중국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왕 부장은 조선반도의 비핵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중국의 기본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라오스가 의장국인 아세안 외교장관회의(AMM)에서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위로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은 “1월 6일 핵실험, 2월 7일 로켓 발사,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의 행동에 우려를 표한다”며 북한의 도발 행위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비엔티안=유지혜 기자, 서울=전수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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