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 이리 묶고 저리 막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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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다음달 29일부터 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가 시행된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규제와 은행.보험사의 준비 부족으로 시행 초기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이런 저런 규제를 만드는 바람에 '은행에서 다양한 보험에 손쉽게 가입한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기 어렵게됐다는 평가다.

방카슈랑스가 시행돼도 은행에서 일단 저축성 보험만 취급하고, 종신보험이나 자동차 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은 2005년 4월에야 허용된다. 은행이 특정 보험사와 단독으로 제휴하는 것도 금지된다.

금융연구원 정재욱 박사는 "정부가 방카슈랑스의 활성화를 진정으로 원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규제가 많다"며 "예를 들어 은행 지점당 방카슈랑스 담당 직원을 2명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규제를 풀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휴 보험사 못 정한 곳도 있다=정부가 지난달 말에야 방카슈랑스 시행 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일부 은행은 아직 제휴 보험사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이번 주에 제휴 보험사를 결정할 예정이며, 한미은행은 우선협상 대상자를 정해놓고 최종 제휴 대상을 누구로 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방카슈랑스를 하려면 전산망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담당 직원에게 판매 상품의 내용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정부가 은행.보험사의 단독 제휴를 금지하면서 한 은행이 많게는 11개 보험사와 제휴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방카슈랑스 담당 직원이 지점당 2명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1명이 5~6개 보험사의 수십가지 상품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2명이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은행 직원이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나중에 고객과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은행이 여러 보험사와 제휴하다보니 각종 부수비용이 많이 발생해 보험료를 내릴 여지도 별로 없게 됐다. 당초 방카슈랑스를 시행하면 설계사 수당 등을 줄일 수 있어 그만큼 보험료를 인하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당분간 저축성 보험만 들 수 있다=2005년 4월까지 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은 저축성 보험과 신용생명 보험 등으로 제한돼 있어 고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축성 보험은 은행 적금과 성격이 비슷해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파는 효과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축성 보험 가운데 사고 때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위험보장 특약을 붙인 상품이 있지만 이것도 2005년 4월부터 허용된다.

또 보험의 대표 상품인 종신보험.암보험 등 보장성 보험과 자동차 보험은 2005년 4월에야 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고, 은행에서 모든 보험을 취급하는 것은 4년 뒤인 2007년 4월에야 가능하다.

다음달부터 은행에서 취급하는 저축성 보험은 ▶중도 해약하면 원금을 제대로 못 찾을 수 있고▶이자도 적금보다 적은 데다▶정부가 만기 7년 이상 상품에 적용해온 비과세 혜택을 없애는 것을 검토하고 있어 은행 적금과 비교해 크게 주목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은행에서 취급하는 신용생명 보험은 대출받은 사람이 사망하면 보험사가 대신 대출금을 갚아주는 상품인데, 은행이 대출 고객에 보험 가입을 강요하는 부당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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