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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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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9면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갔다. 작년과 올해는 유난히 어린이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학대와 묻지마 범죄로 얼룩진 것 같다. 지난해 12월, 여름 옷을 입고 깡마른 몸으로 인천의 한 마트에서 발견된 여아 학대 사건, 아이를 화장실에 감금하여 잔혹하게 학대하고 살인한 ‘원영이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지난주에는 10대 여중생들을 성폭행하고 성매매를 시킨 30대 남성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다. 안타깝게도 아동과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


우리나라의 아동 학대 입건 수는 2001년에 2105건이었던 것이 2015년에는 1만 1709건으로 급속히 늘어났다.15년사이 무려 5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서 아동 학대는 남·여 아동에게서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하지만, 성적 학대의 경우 남아는 11.6%인데 비해 여아는 88.4%로 여아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학대 비율이 현저히 높다.


아동 학대와 성적 학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아들은 노동 착취, 성폭행, 성매매, 조혼(早婚) 등으로 인해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작년 시에라리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국제 시민단체들이 에볼라 발생 이후 10대 임신과 성매매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현장 소식을 전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에볼라 감염병 이후, 왜 갑자기 10대 여아들의 임신이 증가했을까? 그 연관 관계는 이렇다. 에볼라 창궐을 막기 위해 학교를 9개월 동안 닫아버리자 무방비로 노출된 소녀들에 대한 성폭행이 증가했고 또한 에볼라로 부모를 잃은 소녀들이 성매매로 근근이 먹고 살게 되면서 소녀임신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예멘에서는 8살 소녀가 결혼한 날 밤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화상을 입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30%가 17세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하는 15세 미만의 소녀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여아, 즉 소녀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취약한 대상이 돼 학대·성폭행·조혼과 출산 등으로 소녀다운 삶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심지어 성인으로 채 자라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정, 지역사회, 국가와 세계사회가 힘을 합해 보다 큰 그림 안에서 통합적으로 접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국제사회가 전 세계의 절대 빈곤을 반으로 줄이고자 했던 새천년 개발목표를 마감하고 경제·사회·환경발전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시작한 해다. 이러한 SDGs를 이행하는 방안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유엔에서 개발도상국 소녀들을 위해 향후 5년동안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Better Life for Girls)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다. 한국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한 개발도상국의 소녀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교육, 보건, 직업교육을 통해서 소녀들이 소녀다운 삶을 되찾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하겠다.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이제 어느 정도 잘 살게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 ‘세계 이웃’ 가운데 가장 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성폭행, 아동 학대, 성매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소녀들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소녀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건강한 성인 여성으로 자라나서, 폭행과 살인에서 자유로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작은 힘이 전 세계 소녀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소망한다.


김은미이화여대?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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