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 항해 강행·피항 갈림길에|창당 1주 맞은 신민당의 앞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8일로 창당 1주년을 맞은 신민당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우울하기만 하다.
자신들도 놀란 의외의 총선 대승과 민한당 해체, 그에 따른 거대 야당으로의 출범 등 화려한 데뷔가 1년새 멍들고 얼룩진 모습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큰 덩치의 위력에서 오는 힘으로 여당을 긴장시키기도 했으나 자체 갈등 역시 심화돼 신보수회가 끝내 「딴살림」을 차리는 등 출발 때와는 달라진 체격과 체질 앞에 씁쓸해 하고 있다.
소속의원들은 정부·여당과의 정면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장외 투쟁이 대여 엄포 단계에서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전의와 함께 두려움 역시 없다고는 할 수 없다.
12·2 예산 파동, 의원 및 보좌관 소환, 보좌관 구속, 의원 구인장 발부·기소 등 일련의 조치를 일방적으로 당해 온 신민당 의원들은 대화 정치에 대한 불신감과 더불어 힘의 정치 앞에서의 무력감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벽에 부닥쳐 지난 1년간 외쳐 온 장외 개헌 투쟁을 불가불 발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참에 국정 연설을 통한 『개헌 논의 불가』의 쐐기를 만났다.
결국 신민당은 창당1년을 맞아 이대로 좌초할 것인지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벽에 부닥쳐 볼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초 의사당 사태로 인한 여야의 대치가 대화로 극적 타결되자 신민당 의원들은 파국을 면하게 된 점과 정국을 대화로 풀어 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물과 며칠만에 소속의원 7명이 기소됨으로써 『여야 협상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배신감과 『힘으로 밀어붙일 때 신민당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는 참담함이 뒤얽혀 착잡한 심사들이다.
곁으로는 이 같은 상황을 강경 투쟁과 곧바로 연결시키자고 목청을 돋우지만 투쟁 의지의 강도도 확실치 않은데다 「개헌 논의 88년까지 유보」라는 국정 연설로 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17일의 의원총회가 사법 조치에 대한 분노와 개헌 논의 유보에 대한 성토 등 대대적인 「포격」이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몇몇 의원에 의한 원론적 언급만으로 끝난 것은 작금의 당내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정국은 본격 대결의 계절로 접어드는데도 앞날을 점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아 의원 개개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의원들이 내심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장외 투쟁이 맞닥뜨리게 될 벽의 두터움과 그 반응의 강도.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와 대립되는 행동과 주장을 했을 때 상당히 중량감 있는 책임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게 의원들의 느낌이다.
여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민정당이 눈에 띄게 소외되는 듯한 인상도 신민당과 의원들을 위축시키는 한 요인.
『대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민정당과 대화해 봐야 소용없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강경 투쟁과 그에 따를 파국·혼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으며 그나마 선택의 폭이 좁다는 측면도 의원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장외 투쟁」은 지난 연말부터 줄기차게 선언해 온 대목이면서도 아직까지 구체화에 전혀 진전이 없다.
개헌 추진 본부 시·도 지부장을 임명하긴 했으나 당초 부총재 급으로 맡기겠다던 인선 구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일부 초선 의원이 임명되는 등의 인선을 보고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조직적인 투쟁에 회의를 품는 이가 많다.
신민당은 다음주 김영삼씨가 입당하면 대여 전열을 재정비한다는 구실 아래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방침이다.
장외 투쟁의 신호탄이 될 개헌 추진 본부 시·도 지부 결성 대회 일정도 아직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이미 강경 선회 쪽으로 굳혀진 듯한 여의 태도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의원들 중 많은 수는 대화에 의한 원내에서의 원만한 수습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여권의 태도 변화 등 상황 바뀜이 없는 한 의원 각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외 투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신민당의 처지다.
여권의 강경 대응은 자칫 신민당을 강경 투쟁으로 몰아세우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여러 측면에서 「당분간의 냉각기」는 앞으로 신민당의 행동 방향은 물론 정국 흐름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게 분명하다.
다만 개헌 논의 유보라는 국정 연설의 제의를 민정당이 구체화하기 위한 대야 접촉·설득을 벌일 경우 신민당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원 7명이 바로 며칠 전 기소된 현 상태에서는 신민당이 대여 대화에 나서기는 어렵지만 국정 연설을 계기로 정국이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8일 상오 10시 중앙 당사에서 있은 창당 1주년 기념식은 축제 분위기였던 민정당과는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진행돼 대조적.
참석자들은 1년 전을 회고하며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 새삼 놀라는 표정들.
민한당 해체와 함께 1백3명으로 불어났던 소속의원은 그 동안 1명이 사망(김록영 부의장)하고 신보수회 소속 12명이 탈당함으로써 9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때의 창당 공신이었던 조연하 의원을 비롯, 중진급인 박해충·김옥선 의원 등이 해당자로 몰려 「제명」까지 거론됐으며 이중 조·김 두 의원은 자격정지 2년이란 징계 절차가 계류 중인 상태.
이민우 총재와 부총재 중 이기택·김수한·노승환 부총재 등 3명은 건재(?)하지만 5명에서 1명이 더 추가된 부총재에 민한당 출신의 이중재 의원과 지난 총선 때 불참을 주장했던 양순직씨를 비롯, 최형우씨 등 원외 2명이 기용된 것도 변화.
사무총장은 이택돈 의원에서 이용희 의원을 거쳐 유제연 의원에 이르렀으며 김동영 원내총무는 며칠 전 사표를 제출했으나 지난 1년을 이끌어 왔다.
민추와 비민추로 대별됐던 세력 분포는 전당 대회 이후 주류와 비주류로 바뀌었고 비민추이던 이기택계는 비주류이면서도 민추에 가입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비주류 계보도 김재광계가 사실상 동교동계에 흡수되다시피 됐고 신도환계는 유일한 계보원이던 신병렬 의원이 신보수회와 함께 탈당함으로써 이철승계와 이기택계만 남은 결과가 됐다.
앞으로 김영삼씨의 입당은 당내 세력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허남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