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스텐손, 디 오픈 바람을 지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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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거 지금 실컷 즐겨야 할걸.” 헨릭 스텐손(40·스웨덴)이 7번 홀에서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는 캐디 가레스 로드에게 말했다. 골초인 캐디는 스텐손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면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캐디는 이제 담배를 끊어야 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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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 트로피를 갖고 싶었던가. 디 오픈에서 필 미켈슨을 꺾고 메이저 첫 우승을 차지한 스텐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트룬 AP=뉴시스]

스텐손이 18일 스코틀랜드 트룬에 있는 로열 트룬 골프장에서 끝난 145회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합계 20언더파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스텐손은 마흔살이 되어 처음으로 메이저 우승컵을 안았다.

메이저 최저타 신기록 첫 우승
최고가 아니면 못 견디는 성격
드라이버 대신 2번 우드 티샷
강풍 뚫고 마지막 날만 8언더
최종 20언더파, 3위와는 14타차
닉 팔도 “다시 못 볼 완벽한 경기”

스텐손은 완벽주의자다. 코스 밖에서는 농담을 즐기지만 코스 안에 들어가면 차갑다. 별명이 ‘아이스 맨’이다. 그의 코치인 피트 코웬은 “헨릭에게는 세가지 스윙이 있다. 하나는 좋은 스윙, 또 하나는 아주 좋은 스윙, 마지막은 최고의 스윙이다. 그 중 두 개는 헨릭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고가 아니면 참지 못하고, 성질도 낸다. 2014년 디 오픈에선 클럽을 무릎으로 두 동강냈다. 2013년 BMW 챔피언십에서는 드라이버와 옷을 보관하는 락커를 부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스텐손은 요즘 그런 사고를 치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서 철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2년 연속 PGA투어에서 볼 스트라이킹 부문 1위에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란 드라이브샷 및 아이언샷의 거리와 정확성을 말해주는 통계다.

그는 드라이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해 드라이버로 티샷을 할 때 페어웨이 적중률이 55%였다. 300야드를 넘게 치는 장타자임을 감안하면 나쁜 수치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스텐손이 드라이버를 더 많이 쓰면 성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스텐손은 실수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2번 우드를 사용한다. 디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쓴 건 두 번 뿐이다.

완벽주의자 스텐손은 18일 디 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골프사에 남을 완벽한 경기를 했다. 바람이 부는 난코스에서 버디 10개를 잡아내는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다.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필 미켈슨(46·미국)의 경기도 눈부셨다.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4개로 6언더파를 쳤다. 그가 기록한 최종스코어(267타)는 이전 144번의 디 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는 스코어였다. 그러나 스텐손에겐 3타나 뒤졌다. 2013년 이 대회에서 미켈슨에 이어 2위를 했던 스텐손은 이번 대회에서 보기 좋게 설욕했다. 스텐손은 “멋지게 싸워준 미켈슨이 고맙다”고 했고, 미켈슨은 “내가 진게 아니라 스텐손이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스텐손은 마지막날 8언더파를 쳐 합계 20언더파 264타를 기록했다. 1993년 그레그 노먼(호주)이 세운 대회 최저타 기록(267·타수 기준)과 2001년 PGA 챔피언십서 데이비드 톰스(미국)가 세운 메이저 최저타(265) 기록을 모두 깼다. 언더파 기준으론 2000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세운 대회 최소타 기록(-19)을 한 타 줄였다.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합계 1오버파로 공동 22위에 올랐다. 스텐손과 3위 J.B. 홈즈(미국·합계 6언더파)의 타수 차는 14타 차가 났다. 디 오픈과 마스터스에서 3차례씩 우승한 닉 팔도(영국)는 “우리는 링크스에서 이렇게 완벽한 경기를 하는 선수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스텐손은 “ 올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트룬=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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