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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 보험설계사 보기 힘드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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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형 보험사 A사의 김모 지점장은 최근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하는 설계사 몇 명과 면담을 했다. 주로 경력이 오래된 나이 많은 설계사들이었다. “퇴직연금이나 변액보험을 팔려면 모집인 자격을 따야 하는데 이 나이에 따라잡으려니까 너무 힘들다”는 이유였다. 김 지점장은 “경기 부진과 저금리로 보험 영업이 쉽지 않다 보니 그만 두겠다는 설계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생보·손보 설계사 총 20만
4년 새 종사자 각 20%·15% 줄어
‘무실적 퇴출제’로 50대 비중 급증
20대 설계사는 100명 중 5명 불과

‘보험의 꽃’으로 불리는 보험설계사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설계사 숫자가 줄어들 뿐 아니라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방카슈랑스(은행에서의 보험상품 판매)와 인터넷·모바일을 통한 보험 판매가 늘면서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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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 설계사 수는 19만8459명(생명보험 11만7311명, 손해보험 8만1148명)이었다. 2010년부터 집계된 전속설계사 수는 3년 연속 감소세이다. 2012년 말과 비교하면 생명보험은 19.6%, 손해보험은 14.6% 줄어든 수치다. 생명보험협회에 등록된 설계사 수를 살펴보면 감소세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1999년 24만1948명에 달했던 생보협회 등록설계사 수는 지난해 말 그 절반 수준인 12만721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설계사 수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보험 영업 환경이 척박해진 탓이다.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이다 보니 신규 고객유치는 갈수록 어렵다. 각 보험사는 ‘3개월 이상 무실적’처럼 기준을 정해놓고 저효율 전속설계사를 정리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저비용 구조의 새로운 판매채널이 늘어난 것도 설계사 조직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다. 보험사 입장에서 전속설계사 조직은 유지관리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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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위촉 당일에 교육비(평균 200만원)와 초기 1년간 매달 정착수당(평균 월 200만원)을 지급하고 7번째 달에 최고 60만원의 정착 축하수당도 지원한다. 이에 비해 방카슈랑스나 홈쇼핑, 온라인과 모바일 채널은 유지 관리 면에서 훨씬 저렴하고 편리하다. 생명보험 시장에서 설계사가 보험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60.3%에서 지난해 19.5%로 줄어들었다.

새롭게 설계사 일에 뛰어드는 젊은층이 줄어들면서 설계사 조직은 고령화가 심화됐다. 생보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5년 14.9%에 그쳤던 50대 이상 설계사 비중은 지난해 말 34.8%를 기록했다. 설계사 세 명 중 한 명은 50대 이상 장노년층인 셈이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설계사 비중도 2.2%에서 5.9%로 껑충 뛰었다.

한 대형 손보사 대리점 대표는 “요즘 신입 설계사 중엔 직장에서 은퇴하고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이 일을 선택하는 50대 이상 장년층이 많다”며 “반면 젊은층은 잘 오려고 하지도 않고, 인맥이 약하다 보니 쉽게 이 일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보험설계사의 고령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은 설계사 중 74%가 50세 이상이고 60세 이상의 비중도 41%에 달한다. 일본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젊은층이 더 나은 직업을 구할 수 있게 되자 설계사 신규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계사 조직의 이러한 변화는 보험시장 판도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보험연구원 김석영 연구위원은 “대규모 전속설계사 조직이 강점이었던 대형 보험사의 지위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며 “고비용 구조인 전속설계사 조직은 재무설계나 건강관리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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