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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빠졌던 피카추 추억이 현실로” 2030 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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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일 오전 9시 속초 고속버스터미널로 각지에서 온 버스들이 속속 들어왔다. 버스 문이 열리자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의 눈은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있었다. “피카추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한 남성이 소리치자 일제히 사람들이 그 주위로 다가갔다. “잡았다!”

만화 포켓몬스터 1999년 첫 방영
포켓몬 빵 스티커에 열광하던 세대
얼리어답터 청년들 속초로 몰려
게임의 바탕인 지도 반출 놓고 논란
게이머 “구글에 국내지도 정보 줘야”
일각 “안보 특수성 고려 신중해야”

오전 7시부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속초시로 온 윤진주(31)씨는 “‘포켓몬 고(GO)’하러 온 사람들은 딱 티가 난다. ‘동지’라는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포켓몬을 잡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청년들의 공통분모는 오직 ‘포켓몬스터’ 하나였다. 속초시내에는 대형 피카추 탈을 쓴 사람, 포켓몬스터 만화의 남자 주인공 분장을 한 사람이 등장했다.

닌텐도가 출시한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는 한국의 2030 ‘포켓몬 세대’를 정확히 꿰뚫었다. 만화 ‘포켓몬스터’가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처음 방영된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매일 저녁 포켓몬스터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였다. 서울에서 온 회사원 정인호(28)씨는 “어젯밤 포켓몬 잡을 생각에 설레어 잠을 못 잤다. 어릴 적 추억이 현실로 되살아난 기분이다”고 말했다.

포켓몬 세대의 부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인천에서 딸 홍정은(26)씨와 함께 온 윤순복(48)씨는 “(자식들이) 포켓몬스터 빵을 사 달래서 사 줬더니 스티커만 빼고 빵은 몰래 버리기에 혼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딸이 시집갈 때가 됐다”며 웃었다.

청년들을 속초로 모이게 한 건 포켓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다. 1980년대 말과 2000년대 말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포켓몬 고 게임의 바탕이 된 AR 등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이기도 하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대들에게 포켓몬스터란 7080세대로 따지면 시골·할머니·군고구마처럼 노스탤지어(향수)를 느끼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얼리어답터 기질이 강한 청년들이 ‘남보다 속초에 먼저 가 봤다’는 자랑거리를 만들고자 속초로 향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포켓몬 고 인기에 힘입어 AR 게임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국내 게임사들도 AR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드래곤플라이는 올해 출시를 목표로 모바일 AR 게임을 개발 중이고, 한빛소프트는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모바일 AR 게임 ‘오디션 위드 YG’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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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안보 문제 때문에 포켓몬 고 게임의 바탕이 되는 구글 지도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초·울릉도 등 일부 지역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지역이 북한 구역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14일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포켓몬 고가 실행된다는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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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시로 온 이소라(31)씨가 포켓몬 고 게임으로 잡은 포켓몬스터를 보여주고 있다. 이씨가 잡은 몬스터는 ‘고라파덕’이다. [사진 홍상지 기자]

구글은 지난달 국토교통부에 국내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승인해 달라는 신청서를 냈다. 이소라(31)씨는 “이렇게 포켓몬 열풍이 부는데 정부가 언제까지고 막을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도 정보 제공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구글이 요구하는 건 지형물들의 정확한 좌표 정보까지 포함된 지도다.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다”고 했다.

속초=홍상지 기자, 김경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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