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의「더몬드」법안 거부, 앞으로 어떻게 될까|미섬유 수입규제 이제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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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미통상문제에 관한 한「산너머 산」이다. 「레이거」미대통령의 더몬드법안에 대한 거부권행사로 한시름 놓나 싶었으나 이젠「섬유류 수출에 대한 불공정행위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처방은 다르지만 한국을 비롯한 섬유수출국에 대한 규제정책은 계속 추진해 나갈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의회의 보호주의에 맞서 행정부가 강력히 견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치고 장구치며 서로의 입장을 잘 조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부터 더몬드법안이 담고있는 내용은 극단적인 보호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것이었다. 만약 이법이 확정되었더라면 한국의 경우 섬유는 35%, 신발은 17%가량의 대미수출을 당장 줄여야할 형편이었다.
「레이건」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처럼 우격다짐으로 수입규제를 하다가 반발을 살게 아니라 섬유수출국들의 약점을 찾아내서 차근차근 실속을 차리자는 책략에서 나온 것이다. 의회에 보낸 거부권 메시지에서 구절구절마다 불공정행위를 강력히 규제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나 불공정거래조사를 마지막단계에서 전례없이 백악관 직속기구인 경제정책위원회로 격상시켜 지시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행정부도 의회와 기본적으로는 같은 생각이고 한편임을 강력히 표현한 것이다.
어쨌든 더몬드법안이 의회에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해도 이를 계기로「대내적인 수입규제와 대외적인 개방압력」을 기조로 하는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은 더욱 노골화 할 조짐이다.
「레이건」이 이번 거부권메시지에서 여려차례 강조한『결코 가만 있지 않겠다.』는 뜻은 우선 두 가지로 해석된다. 주요 섬유수출국들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아예 지난번처럼 통상법 301조를 발동해서 당사국에 대해 무역보복을 선언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고 아니면 MFA(다음간 섬유협정)를 내년에 다시 만들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벌칙조항 같은 것을 삽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로서는 상당한 타격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60일 이내 조사결과와 대응책까지 보고할 것을 못박았으니까 늦어도 내년 3월께는 미국이 어떤 카드를 뽑을지 판가름이 난다고 보여진다.
말이 조사지 이번 조사과정에서는 관계 국가를 방문하거나 자료를 별도로 청구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섬유와 관련된 시비거리와 각종 탄원서·증거들이 이미 상무성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이것들만 다시 훑어보는 것으로 이번 조사의 결론과 대책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이나 국내업계에서도 그전처럼 사절단을 급조해서 보내거나 뒤늦게나마 집안단속을 한다고 해서 호전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그저 말짱만 낀채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측이 어떤 형태의 교역을 불공정거래로 본다는 견해를 밝힌 적은 없다. 다만「국제협약에서 정해진 쿼터를 초과해서 미국에 수입되고 있는 섬유류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조사결과 밝혀지는 쿼터분을 모두 우회수출이나 품목위장분류 등을 통한 변칙수출 또는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해 버릴게 뻔한 노릇이다.
요컨대 불똥이 얼마나 어디까지 튈지는 불을 붙이는 당사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경우가 없다」는 식으로 상거래를 대상으로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기네 일방적으로 재판을 하게되면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경우로는 섬유제품에 대한 수입통관창구의 일원화정책 같은 것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통관창구가 분산되어 있는 바람에 부당한 위장수출행위를 막을수 없으므로 특정지역으로만 통관시켜야겠다는 명문을 내세워 사실상 섬유수입을 규제하는 경우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관심사항은 미국의 이같은 태도가 내년2월부터 시작되는 MFA협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요즈음 같은 보호무역주의 대세를 감안한다면 미국측이 MFA에서 최소 6%이상을 보강하고있는 기존 쿼터증가율 자체를 동경하자거나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감축시키는 공작을 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불공정무역을 한 사실이 밝혀진 나라에 대해서는 쿼터를 대폭 줄이자는 등의 벌칙조항삽입을 통해 사실상의 수입규제를 성취하려 할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는 쿼터에 포함되어있지 않는 실크나 린네르등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작전도예상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더몬드법안이「비토」는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써 우리측이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은 내년 2월부터 시작되는 MFA협상이다. 기존 MFA가 내년 7월말로 종료되므로 새로운 협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섬유수출개도국들이 여하히 공동전선을 구축하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1대1로 맞상대를 하게되는 쌍무협상 이전단계인 다음간 협상에서 개도국들이 공동보조를 취해야 미국의 입력을 그나마 견디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존 대미섬유 쿼터만해도 MFA상으로는 최소한6%이상의 증가율을 보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품목별 쌍무협의 과정에서 2∼3%로 축소 운용되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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