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교양] '걸었다 노래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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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즈미 마도카는 일본의 하이쿠(俳句) 시인이다. 하이쿠는 열일곱자로 된 짧은 정형시 속에 계절감과 내면의 소리를 함축하는 시 형태로 일본 사람들의 독특한 미의식을 대표한다.

여성만을 위한 하이쿠 전문잡지 '월간 헵번'을 발행하고 있는 그가 2년 전 늦여름, 한국으로 떠날 때 쓴 하이쿠는 무궁화로 운을 뗀다."비 오는 날은 비를 향해 활짝 핀 무궁화로다."

30대 중반의 여성 하이쿠 시인은 왜 무궁화를 노래하며 부산역에서 서울 시청까지 5백 ㎞에 걸친 긴 도보여행을 시작했을까. 1999년 일한(日韓) 문화교류회의 위원이 된 마도카는 멀리 바라만 보던 한국 땅을 곰곰 들여다보기에 이르렀다.

"사랑을 키우기에는 너무나 한국을 모르는 게 아닐까? 아, 이웃 사람들을 좀더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시인은 2001년 8월과 11월, 2002년 4월과 7월과 10월, 다섯번으로 나누어 철따라 한반도를 종단해 걸으며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58수의 하이쿠를 지었다.

"무슨 연유일까? 처음 찾아온 이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여행을 하며 사랑을 속삭이며 끝난 여름날." "밭일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세계는 하나라는 말들을 해쌓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도무지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다니까!'-진흙탕 길을 걷다 만난 할아범 새하얀 수염."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계기로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연재돼 호평을 받은 뒤 단행본 '사랑해요'로 출간돼 화제가 된 그의 여행기와 하이쿠를 옮긴 이 책은 아픈 역사를 딛고 서려는 따뜻한 사람들 얘기다.

"'왜 걷는가' 하는 의문은 그대로 '왜 하이쿠를 읊는가'하는 의문과 통한다"고 깨달은 그는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구분" 조차 사라지고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친구"가 된 그들을 위해 쓴다. " 마을 사람과 나그네를 향하여 산이 웃도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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