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권제재 보고서 보니 "성폭력, 발가벗겨 매질 다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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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6일(현지시간)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 유린 주도자로 제재하면서 공개한 인권보고서는 5쪽으로 이뤄졌다. 북한의 '지존'을 겨냥한 초강경 카드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단출하다.

15명의 개인을 제재 대상으로 올렸지만 각각에 대해 구체적 인권 유린의 혐의를 특정하진 않았다. 대신 각 기관별 인권 유린과 검열 사례를 포괄적으로 열거하고 그 기관에 속한 대상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권 유린 사례를 명기할 때도 "유엔인권위원회 산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따르면~"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하지만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언론에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인권 북한 이슈를 제기해왔고 북한의 인권 유린과 학대를 생생히 묘사한 COI 보고서(2014년 2월)의 작성에도 깊숙이 관여해왔다"며 이번 보고서 작성과 제재 발표가 미 정부의 오랜 자체 노력의 결실임을 강조했다.

또 다른 미 정부 관계자도 "(이번 보고서는) 중국의 도움 없이 만들었다" "(지난 2월) 미 의회의 대북 제재법안이 통과되기 훨씬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어왔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번 김정은을 지목한 인권 제재 발표로 북·미,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 정부가 계속해서 인권 문제를 제기해왔기 때문에) 지도자의 책임을 묻는 것에 북한 정부가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의 이번 제재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 기존 대북 정책 스탠스를 유지하고 반영한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 정부는 이날 발표된 북한 인권 제재 보고서에서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의 인권 유린 행태를 지적하면서 "김정은이 정권을 계승한 뒤 처형당하는 고위 관리 숫자가 늘었다. 또 김정은은 외국 TV(프로그램)를 시청하거나 유통하는 행동을 조사해 보고토록 국방위원회에 지시했다"고 적시했다.

국가보위부에 대해선 "탈북자 증언과 위성 영상에 따르면 수용소 안에서 즉결 처형과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잔인한 처벌을 다반사로 행하고 있다"며 "각종 고문과 성폭행, 강제 낙태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보위부 27국(Bureau 27, 송신감시국)에선 TV 장치를 뜯어고쳐 허가된 북한 채널들만 수신하고 한국·러시아·중국 채널 등은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개인의 집을 불시 방문해 TV를 혹시 변경했는지, 외국 DVD 등을 사용했는지, 중국 심(SIM)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지 조사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 인민보안부의 경우 "탈북자들에 따르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성폭력, 장시간 천장에 매달아놓기, 발가벗기고 매질하기 등의 학대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또 "조직지도부는 박남기(당 계획재정부장으로 화폐개혁을 이끌다 2010년 처형된 것으로 알려짐)의 실종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정찰총국에 대해선 "한국과 일본 시민을 납치했으며 여러 암살 시도에도 연루돼 있다"고 지목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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