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동해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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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근래에 나온 신인들의 첫시집들 가운데 이상국의 『동해별곡』은 거기에 실린시들이 자연과 농촌사회의 삶에 뿌리내린 정서의 깊이와 짜임새있는 시적구성을 통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시집의 제목으로 쓰이고있는 「동해별곡」연작 8편은 대체로 처용으로 상징되는 우리민족의 고대적 정서의 뿌리와 함께 이끼낀 신화세계의 순결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시집의 보다 중요한 주제는 「죽음」의 이미지, 그리고 「소」로 나타나고 있는 농민 또는 그들의 삶의 현실이다.
『바람이/남대천을 건너오는 동안/늙은 나무들이 뒷짐을 지고 바라보고 있다/닫히는 문들이 모두 닫힌 다음/비로소 길이 되는 저녁 서문리/고욤나무는 고욤만 열려서/해마다 떫게 익고/저물면 핏줄같은/서문리에 이르는길은/세상 어디로도 이어지고 있다』(「저녁 서문리」전문).
이시는「서문리」라는 이름의 인간적인 삶의공간이 밤이 되어 인간세상의 『문들이 모두 닫힌 다음』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삶의 공간으로 눈떠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시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적인삶의 세계와 무관한듯이 보이는 죽음의 세계가 삶의세게 배후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한다.
이시인은 삶과죽음이 별개의것이 아니라 낮 또는 밤이라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우리의 의식속에 특징적으로 떠오르게되는 동일한 현상의 양면성으로 보고 있는듯하다.
이시인이 즐겨 다루고 있는 또하나의 주제는 「소」인데, 그것은 대체로 농민의 화신 또는 농민들의 숙명적인삶의 상징물로 드러나고 있다.
『소를 만나면/멀리는 조상님의 후생이거나/가까이는 늙은 형님을 보는 것같다』(「근성」첫연)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소」는 한핏줄의 친화감속에서 인식 되고 있다.
이상국은 또한 소와인간의 처지를 뒤바꿔서 보여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전도된 인식속에서「소」는 그자체의 속성을 통해 농민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속박받는 민중적 삶과 해방의 이미지로 확대 되기도한다.
『소는 이렇게 말했다/세상이 바뀌면/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그런 날 밤/콩 섞인 여물을 주고 곤히 자는 밖에서/아무개야 아무개야 불러 나가보니/그가 날개를 달고 훨월 날아가고 있었다』(축우지변의 뒷부분).
이처럼 동화적인 분위기속에서 펼쳐지는 이시인의 상상세계는 인간이 자연계에 인위적으로 부여한 계층적 질서와 구속-속박의 메커니즘을 시원스럽게 해체시켜 생명해방의 경지를 자연스럽게 되찾고 있다.
이와같은 독자적 시세계의 개척을 통해 이상국의 시들은 분명히 우리의 서정시에 하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나은 터전을 만들려는 농민적 의지가 빠진 농민숙명주의, 농민이 저한 현실을 냉철하게 파학하려는 시각이 결여된』(신경림의「해설」의 일절)기미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황광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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