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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글씨체 도전하는 서예계 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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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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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시묵회에는 협력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음으로 양으로 박원규의 도전에 힘을 보탰다. 왼쪽부터 이동국 서예부장, 류성우 석주박물관장, 박원규, 이강록 회장, 김언호 대표, 김태영 다큐멘터리 감독.

하석(何石) 박원규(69)씨는 서예계에서 재주많은 기인으로 통한다. 학인(學人)의 기초 위에 예인(藝人)의 경지를 이뤘고 지사(志士)의 풍모마저 풍긴다. 그 의 주변에 마음 통하는 기인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석 박원규 대형 서예작업 출정식
길이 3m30㎝, 폭 1m50㎝ 종이에
불교경전 ‘부모은중경’ 필사 착수

6일 오전 서울 압구정로 미성상가 2층 널찍한 방을 찾아든 30여 명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하석의 장도를 축하했다. 이름하여 시묵회(試墨會)다. 대형 서예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마음을 다잡는 일종의 출정식이다. 하석은 앞으로 15~20일쯤 하루 대여섯 시간씩 전력투구할 붓글씨 계획을 발표했다.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글씨체로 완성하는 것이다. 바닥에 넓게 펼쳐진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 대형 프로젝트는 제 혼자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과 함께하는 겁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다 백두산에서 떠온 물에 먹을 갈아 기를 모아주십시오.”

길이 3m 30㎝, 폭 1m 50㎝ 종이는 류성우 석주박물관장이 4년에 걸쳐 몇 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구해왔다. 먹은 이강록 마이다스 그룹 회장이 1년에 100개만 만든다는 일본의 명인에게 특별히 부탁해 입수했다. 여기에 한국의 붓이 더해져 동아시아 삼국의 합작품이 됐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하석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때 얼른 시작하라”고 독려하며 작품이 완성되면 독특한 책을 출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서예부장은 전시 기획을 맡았다. 올해 제5회 ‘일중 서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한층 책임감을 느끼게 된 하석은 “광개토대왕비 글씨체를 쓰는 것은 모험이지만 그 웅혼한 기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건 도전할 만한 과제”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부모 자식 간 험악한 일이 다반사가 된 현대 사회에 ‘부모은중경’의 깊은 뜻을 글씨로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석은 8월 말쯤 작품이 완성되면 마무리를 한 뒤 내년 4월 초파일에 서예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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