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공정위 CD금리 담합 조사, 4년 끌다 "증거 불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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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시중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사건 심의에 참석하기 위해 은행 관계자들이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4층 심판정. 50석 남짓한 참관인석은 KB국민·NH농협·신한·우리·KEB하나·SC제일 등 6개 은행에서 나온 직원과 취재진으로 일찌감치 꽉 찼다.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오후 2시15분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나머지 8명 위원과 함께 심판정에 들어섰다.

드러난 증거는 단체 메신저뿐
“법위반 결정 곤란” 절차 종결
업계, 사실상 무혐의로 봐
“금융시장 이해 부족” 지적도

“6개 은행의 부당한 공동 행위에 대한 심의를 시작하겠습니다.” 4년을 이어 온 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 조사에 대한 공정위의 최종 심의는 정 위원장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이날 전원회의는 오후 10시까지 이어졌지만 결과 없이 끝났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전원회의를 다시 열어 결론을 냈다. ‘심의절차 종료’. 혐의 있냐, 무혐의냐를 가를 근거가 부족해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같은 처벌 없이 사건을 끝낸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김석호 공정위 상임위원은 지난 5일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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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절차 종료는 무혐의와는 차이가 있다. 무혐의는 심의 결과 법을 어긴 사항이 없어 혐의 자체를 벗는 걸 뜻한다. 이와 달리 심의절차 종료는 CD금리 담합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새로 발견된다면 공정위가 다시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다만 4년에 걸친 공정위 추적에도 찾지 못한 증거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업계에서 공정위의 이번 판단을 사실상 무혐의로 보는 이유다.

공정위는 2012년 7월 CD금리 담합 조사를 개시했다. 가계대출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CD금리를 은행이 담합해 낮추지 않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많이 받아냈다는 혐의를 잡고서다. 공정위 조사 부서는 담합의 결정적 증거로 발행시장협의회 단체 메신저를 제시했다. 바로 은행 반박에 부딪혔다. 지난달 22일 전원회의에서 한 은행 측 변호사는 “CD금리 발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메신저 대화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CD금리를 올려서 발행하자’는 발언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은행 측 변호사도 “원 단위 가격까지 같았던 라면 담합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명확한 증거 없이 담합을 한 것 같다는 ‘추정’만으로는 유죄라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들었다. 금리 인하기엔 물론 인상기에도 CD금리가 경직적으로 움직였던 점도 ‘은행이 수익을 얻으려 담합했다’는 공정위 조사 부서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근거가 됐다.

김석호 상임위원은 “담합 합의라고 볼 수 있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전원회의 결과를 전했다. 은행의 해명 대부분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무리한 조사’ ‘4년에 걸친 시간 끌기’란 비판만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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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A은행 임원은 “공정위가 금융을 잘 모르면서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담합 조사에 나섰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금융당국 관계자도 “ 애초에 발을 잘못 디뎠다”며 “공정위가 문제라고 본 건 시장 흐름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단기 금리시장을 방치해 왔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정위 조사 직후 금융당국은 ‘단기 지표금리 개선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2012년 8월 가계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지표를 CD금리에서 단기 코픽스(COFIX)로 전환하는 안을 부랴부랴 내놓기도 했다.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한 셈이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해 온 소비자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공정위의 판단은 국민과 시장을 우롱한 처사”라며 “공정위의 부당성을 밝혀내 관련자를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은 공정위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B은행 자금부장은 “공정위 위원들이 추정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기간 조사가 이어져 은행에 큰 부담이었다. 혹시라도 담합으로 결정을 내려서 소송까지 가게 되면 자칫 금융시장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C은행 자금부장은 “이번 기회로 은행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은행 직원들에겐 앞으로 메신저 등을 통해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자제토록 주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6일 “그간의 금리 담합 의혹이 해소돼 다행”이라며 “은행과 금융당국도 단기 금리의 투명성·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한애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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