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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무대, 무대 위의 삶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무대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무대’에 오르고, 그들은 ‘무대 위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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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록 스타의 호흡기 노브레인

록 페스티벌의 계절,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악동이 돌아왔다. 올해로 데뷔 20주년, 7집 앨범 ‘브레인리스(Brainless)’를 선보인 펑크 밴드 노브레인. 연습실에서 합주하고 무대에 오르는 건 이들에게는 20년간 해온 일상이다.

지금까지 라이브 무대만 3000회, 공연은 이들의 호흡기나 마찬가지다. 20년 밴드의 꿈은 그래서 ‘앞으로도 20~30년 오래 하고 싶다’도 아니고, “그냥 죽어서 못하게 될 때가 자연스럽게 끝나는 거다”라고 했다.

“휠체어 타고 막 간당간당하면서도 노래하는 거 너무 멋있지 않아요?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할아버지 그룹이 얼마 전에 오셔서 공연하는데, 저 감동해서 울었어요. 되게 멋있더라고. 남들은 ‘약발 다 됐다’, ‘목소리도 안 올라가고 저게 뭐냐’ 욕하는데 전 오히려 훨씬 감동적이었어요. 힘들어하면서도 날 위해 노래해주는 그 모습이.”

노브레인의 평소 모습은 무대 위와 사뭇 달랐다. 8할이 장난과 농담일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진지했고 차분했다. 무대 뒤 모습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폭발하기 전 그들은 오히려 훨씬 힘을 빼고 집중한다. “나는 오징어다, 해물이다 하고 힘을 빼고 최대한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넉살 좋고 선동하고, 노브레인은 무대에서만 그렇다.

그래서 무대에서 누구보다 더 폭발적이다. 그동안 늘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들어 온 이들은 이제야 스스로에게 좀 여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이번 앨범은 ‘중년 펑크’라 이름 붙였을 정도로 멤버들 각자가 중년임을 뼈저리게 느낀 뒤 만든 곡들이다. 예전에는 무대에서 ‘넌 내게 반했어’를 외치는 선동가가 되기를 자처했다면, 이제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보다는 어둠을 같이 교감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전에는 시를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여기에 뭘 담아서 어떻게 보여질까 이러저리 계산해서 시를 쓰려고 했다면, 지금은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술자리에서 친구들이랑 ‘야, 사는 게 왜 이렇게 희망이 안 보이냐’ 했던 말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기는 거죠.”

대중의 반응에 대해서도 초월했다. “지금은 우리가 백날 향기로운 가사를 쓰고, 듣기 좋은 코드로 음악을 만들어도 돈이 없으면 결코 대중화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이러한 비관이 다행스러운 건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자신들의 음악과 무대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아픈 와중에 휠체어 타고라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거다.

20년이 지나도, 마흔 언저리에도 전투력이 급상승해 무대에서 방방 뛰는 노브레인이 있다. (다만 숨이 좀 빨리 찰 뿐.) 갈수록 무대에서 관객과의 교감 포인트가 많아지고,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의 무대가 더 즐겁다는 이들이 있다.

안 올라가는 고음에 ‘삑사리’ 나는 할아버지 노브레인이 기대되는 건, 그때도 뇌 없이 ‘노브레인’에 가슴으로 충만한 ‘록 스타’일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록 스타는 늘 우리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존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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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체질 오종혁·배수빈

충무아트홀 중극장,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작은 연극 무대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브라운관을 통해 더 익숙하게 보아온 배우 배수빈과 아이돌 출신의 오종혁이다. 연극 ‘킬미나우’의 공연장. 이곳에서 오종혁은 휠체어를 탄 지체 장애인을, 배수빈은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어가며 죽음에 이르는 작가를 연기한다.

이들이 아버지와 아들로 한 무대에 섰다. 연극배우 출신들이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연기 잘하는 스타로 각광받으며 다시 연극 무대를 돌아보지 않을 때, 이들은 거꾸로 연극 무대를 고집하고 있다. 특히 ‘킬미나우’는 장애인의 성과 안락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국내 초연작으로, 누구나 조금씩은 궁금해하지만 쉽게 공론화하지는 못하던 주제를 과감히 수면 위에 올린 문제작이다.

“대본을 처음 보고 일주일 동안 망설였어요. 너무 강렬하고 어려운 이야기였죠. 근데 이 이야기를 제가 아닌 다른 분의 연기를 통해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배가 아플 것 같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늘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은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배수빈)

오종혁은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해 소속사를 애써 설득해야만 했다. 연극 무대는 돈이나 인기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방증일 게다. 그렇게 설득하면서까지 무대에 서고 싶은 의지가 오종혁에게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서게 됐을 때 시기가 별로 안 좋았는데, 그때 무대에서 배우 선배님들에게 받은 에너지를 잊지 못해요. 언젠가는 연기로써 무대에서 제대로 한번 서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연극을 계속하고 있어요. 정말 무대는 좋아서 서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어떤 목적이 아니라 좋아서. 다른 멋있는 말은 생각이 안 나요.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 한 무대 한 무대 거치면서, 아직은 멀었지만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조금씩은 다가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오종혁)

“무대에서는 항상 똑같은 텍스트를 수십 번 계속해서 하게 되잖아요. 또 연습 과정에서도 연기적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죠. 배우로서 표현법이 훨씬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요. 앞으로도 꾸준히 무대에 설 겁니다.”(배수빈)

TV 화면이 아니라 연극 무대, 눈앞에서 지극히 연극적인 연기를 하는 이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다 어느새 저들이 배수빈과 오종혁임을 잊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은 무대와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녹아들었고, 극은 관객을 완전히 빨아 당겼다. 연극 무대를 통해 성장한다는 이들의 말이, 무대를 보는 사람에게마저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게 바로 연극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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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에너지 스테이션 왁스
“팬들과 좀 더 가까이서 호흡하고 싶었어요.” 왁스는 작년 10월 디지털 싱글 ‘내 맘 같지 않아’를 발표한 후 오랜만에 전국 투어 콘서트 ‘봄愛’를 개최한다. 2년 만의 첫 단독 공연이다 보니 큰 규모의 공연장을 욕심낼 법도 한데 그녀의 선택은 작은 규모의 소극장이었다.

“아직도 많은 팬들이 제가 딱딱하고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할 것 같은 이미지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 사람 되게 좋아하고 털털한데 ‘워낙 방송을 잘 못해서 그렇게 보이는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비교적 작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어요.

‘봄愛’란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 봄에 한창 연애하는 연인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에 관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앞으로의 제 소망은 매년 봄 ‘팬들을 찾아가는 왁스의 소극장 콘서트’를 브랜드화하고 싶은 겁니다.”

2000년 데뷔 이후 왁스는 큰 공백 없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가수 축에 속한다. 16년간 정규 앨범 10집에 수많은 디지털 싱글과 드라마 수록곡을 부를 만큼 왕성히 활동했다. 하지만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방송을 잘 타지 않다 보니 대중은 그녀가 뜸하게 활동한다고 느낀다. 이제 왁스는 사람들에게 잊히는 가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방송과 무대를 가리지 않을 계획이다.

“왜 집에 있는 책장을 뒤지다 보면 옛날 가수들의 앨범이나 사진이 나오잖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그런 책장에서나 존재하는 가수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물론 갑자기 방송을 능수능란하게 할 순 없겠지만 이제부턴 저를 찾는 팬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노래할 생각입니다.”

에너지. 곧 콘서트 무대에 설 예정이라서 그런지 왁스에게선 좋은 기운이 넘쳤다. 그녀의 무대를 보며 에너지를 얻을 관객들과 무대에 서면 오히려 “(관객들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는 왁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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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노래하는 소년 박시환

Mnet '슈퍼스타 K 5’에서 준우승한 박시환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다. 가수로서 활동은 물론이고 드라마와 뮤지컬의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히 활동하는 젊고 실력이 탄탄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엔 오랜 시간 연기를 배운 사람도 어려워한다는 2인극 뮤지컬에 도전했다.

“일단 무대에 서는 사람이 딱 2명이니, 둘이서 빈 공간 없이 무대를 메워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근데 이번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를 무사히 마치면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해기’란 역은 죽음을 앞두고도 삶에 대한 강단이 있는 캐릭터라 연기하기가 어려웠어요. 암 말기 환자의 죽기 전 마지막 모습을 그린 웹툰 ‘아만자’를 참고하며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직도 만들어가는 과정 같아요.”

시한부 청년의 삶과 한을 전달하기에 100분의 무대는 꽤 빠듯해 보인다. 하지만 박시환의 해기는 상대역 ‘강구’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누구보다 해맑은 모습으로 관객을 웃기고 이단교의 집회에 가는 장면에선 머리를 숙이고 삶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관객을 울린다. 서른을 앞둔 청년이라고 하기엔 꽤 성숙한 모습이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어떨지를 떠올려봤는데 저는 해기처럼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고 기쁜 모습으로 장례식 콘서트를 하겠다는 생각은 못 할 것 같아요. 오히려 가족과 지인을 피해서 숨는 게 저에 가깝죠. 해기는 본인이 아픈 와중에도 양아치 강구마저 사람 만들려고 할 만큼 정이 많은 친구죠. 오히려 작품을 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뜻깊은지를 깨닫고 있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그에게 가수와 배우의 매력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가수는 4분이라는 시간 내에 제 사연을 얘기를 해드리는 거잖아요. 그러니 스스로도 빨리 몰입하게 되고 팬들도 쉽게 집중하세요.

반면 뮤지컬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스토리를 제가 아닌 극 중 인물로 분해서 얘기해야 하니 보통은 한 편을 다 보고 나서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객이 많죠. 둘 중 뭐가 더 좋은지 묻는다면 당연히 노래하는 가수가 더 좋아요.

아직까진 제 이야기를 노래하고 팬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요. ‘해보니까 뮤지컬이 더 좋더라’라고 말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최소한 몇 년은 더 해보고 나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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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과 싸우는 반도네온 고상지

양손에서 ‘계단’이 펼쳐졌다 접혔다 하는 사이 화려하다가도 처연한 탱고 선율이 흘러나온다. 녹음실 안 스태프가 이 이국적인 악기의 소리에 빠져든 건 일순간이었다. 이 악기는 반도네온, 연주자는 고상지다. '나는 가수다’부터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한도전-토토가’까지 화려하고 웅장한 탱고 음악의 편곡이 흘러나오는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는 늘 고상지가 있었다.

“첫 무대는 김동률 콘서트였어요. 반도네온 시작한 지 3년도 안 됐을 때라 덜덜 떨면서 무대에 올랐죠. 이후로 하림, 이적, 유희열씨 등과 함께 작업했어요. 대중가요 세션으로 많이 참여하면서 제 이름이 좀 알려진 거지, 대한민국에서 반도네온을 제일 잘해서는 결코 아닐 거예요.”

고상지의 이력은 독특하다. 어렸을 때는 가야금을 켰고,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대학 밴드 동아리를 통해 국악 아닌 음악을 처음 시작했다. 이후 혼자 피아노와 기타로 음악을 만들다, 어머니가 아르헨티나 여행에서 사다 주신 반도네온을 처음 접했다. 독특한 악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재즈 즉흥 연주를 하게 됐고, 이후 반도네온은 고상지를 점점 더 큰 무대로 이끄는 견인차가 됐다.

“전 무대 위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무대에서는 정말 싸우고 있죠. 1부터 10까지 하나도 만족스러운 게 없어요. 무대 위 연주는 그런 불완전한 요소를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하는 작업이니까. 제가 조금 특이해요. 전 만드는 걸 좋아하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신이 나서 어떻게 하면 기승전결 있게 잘 만들어서 관객을 만족시킬까를 바랄 뿐 희열은 이미 느낄 수 없는, 차단된 감정이에요.”

탱고 분위기가 필요한 모든 음악 작업에서 고상지를 찾았고, 수도 없이 많은 무대와 앨범에서 반도네온 피처링을 하고, 그게 발전해 2년 전 고상지 단독 앨범도 냈다. 그리고 5월 말, 피아졸라와 가르델의 곡을 연주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반도네온은 고상지를 음악으로 이끄는 동아줄이자, 작곡하는 고상지에게는 갇히고 싶지 않은 굴레이기도 하다.

고상지가 스스로에게 빠져서 하는 무대는 볼 수 없을 거다. 관객이 무대를 보고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는 완벽주의가 무대 위 곤두서 있고 날카로운 고상지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좋아지는 고상지의 무대를, 반도네온을 벗어나 자신의 음악을 펼쳐내는 고상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획_성영주, 이충섭| 사진_윤상명, 박성제, 정하승
여성중앙 2016.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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