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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결혼 두려움도 나눌 수 있어야 진짜 내 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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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 지 4년, 결혼이 부담스러운 33세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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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심수휘 기자

Q. (어깨도 무겁고, 경제적으로도 고민돼요) 33세의 남자 직장인입니다. 30세 때 친구 소개로 만나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입니다. 벌써 연애 기간이 4년째가 되었네요. 만난 시간이 길어지면서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친을 좋아하고 연애로 인한 안정감도 좋지만 결혼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가장이 된다는 책임감뿐만 아니라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주변에도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많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자존심 상한다고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현재 저는 책을 소개해 주는 라디오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인데요, 하루는 책 내용 중에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하나요’란 글이 있었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미혼이나 기혼이냐에 따라 많이 달랐습니다. 미혼인 사람들은 ‘정말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을 많이 보였는데 기혼인 사람들은 ‘사랑도 결혼하면 다 변한다’, 심지어는 ‘미쳤냐’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혼인 사람들은 기혼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경제적 부담까지 있으니 결혼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 때문에 오늘 사연과 비슷한 고민 사연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한 정부기관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남성은 45%가 꼭 다시 결혼하겠다고 답한 반면 그렇게 답한 여성은 19.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양쪽이 다 만족스러워야 잉꼬부부라 할 수 있으니 잉꼬부부는 열 커플 중 두 커플이 되지 않는 셈이네요. 이렇게 결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 것을 반영한 것일까요. 60세 이후 황혼 이혼이 초혼 이혼을 앞선 상황이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생 후반에 홀로되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통계 숫자로 보아도 결혼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행복한 결혼 전제 조건 ‘나랑 잘 맞나’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결혼한 후에 서로 이해하고 잘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랑 잘 맞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랑 잘 맞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성에게 인기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행복한 상대를 만날 것 같은데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날 쉽게 좋아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알 기회를 갖지 못해 ‘보는 눈’이 충분히 계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한테 잘 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보는 눈은 있는데 매력이 없어도 힘들기는 합니다. 답답하죠. 그러나 오히려 실수의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기다리다 보면 자신을 먼저 사랑해 주는, 그러면서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다 좋은 선택은 없습니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죠. 결혼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워도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면 결혼을 하게 되겠죠. 결혼에 대한 저항과 고민이 있을 때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전에 사랑을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겠죠.

친밀한 사랑은 오픈 마인드에서부터

세 가지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열정적 사랑, 친밀한 사랑, 헌신적 사랑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열정적 사랑입니다. 강렬한 매력을 느끼고 서로에게 몰입합니다. 그런데 결혼 후 부부 관계를 잘 지속하려면 친밀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친밀한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친구 같은 사랑이죠. 서로가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단점이나 콤플렉스를 서로에게 열고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첫 단계입니다. 여자 친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한 번 털어놔 보세요.

솔직한 오픈 마인드를 심리학적 용기라 합니다. ‘나는 강하다’ 주장하는 게 아닌 나를 솔직히 보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능력도 그 이상 중요합니다. 내 고민을 오픈해야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보여 줄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에게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하셨는데요, 자존심은 관계에 근거합니다. 나에 대한 평가가 관계 속에서 긍정적일 때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죠. 자존심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나에 대한 긍정성,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관계에 근거하기 때문에 나 혼자의 노력만으로 긍정성을 유지하긴 어렵습니다. 연인 관계, 부부 관계에서 내 자존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약점에 대해서도 말이죠.

앞에 언급한 사연 내용처럼 자존심이 상할까 두려워 속 얘기를 못 한다는 것은 이미 자존심이 상한 상태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것인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상처받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갖고 내 고민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를 솔직히 보였을 때 상대방이 나를 위로하고 꼭 안아주면 내 자존감이 올라가고 긍정성도 커지게 됩니다. 좋은 여자를 만났다는 확신도 생기고요. 그러면 결혼이 가져다줄 불편도 감수하고 결혼할 에너지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컬처 테라피┃카펜터스 ‘Close to you', 거식증 부른 사랑에 대한 갈망

노래 한 곡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제목은 Close to you, 번역하면 ‘너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거야’ 쯤이 될 것 같습니다. 남매로 구성된 그룹 ‘카펜터스’의 대표곡입니다. 가사가 참 순수하고 예쁜데요. ‘왜 새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걸까/ 내가 가까이 있을 때마다 매번/ 새들도 나처럼 간절했던 거야/ 너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거야’로 시작하죠.

1970년에 발표돼 큰 인기를 모았지만 레코드 회사에서는 카펜터스 포스터를 사무실에 걸어 놓는 것을 주저했다고 합니다. 강한 록의 전성기에 너무 순진하고 동화 같은 가사라 평론가들의 비판이 거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도 줄고 나중엔 ‘소닉유스’같은 록그룹이 헌정앨범을 만들 정도로 대중과 전문가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유행을 좇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 오히려 인기를 얻었던 그룹인 셈이죠.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인기가 줄어들자 그 인기가 독으로 작용하여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그룹의 보컬인 카렌은 먹지 않는 병, 거식증에 걸려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식증은 위험할 정도로 말랐는데도 자신의 이미지를 왜곡해 인식해서 계속 다이어트를 하는 무서운 마음의 병입니다. 식욕이 없어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앙상하게 마른 자신의 몸이 살이 찐 것으로 느껴져 더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식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날씬해지려는 노력이 자신의 생명을 죽음까지 몰고 가는 지독히 슬픈 병입니다. 카펜터스가 차라리 큰 인기를 얻지 않고 소소하게 자신만의 음악 생활을 즐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멋있어지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타인의 사랑을 느끼려면 내 단점을 보여주는 용기 또한 필요합니다. 내 멋에 반한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보단 일종의 성취감 아닐까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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