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기업 총수 견제 강화 ‘상법 개정안’ 발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사 이미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사진) 비상대책위 대표가 기업 총수를 견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4일 대표 발의했다. 비례대표 5선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대표 발의하는 법안이다.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있을 때 모회사 발행 주식의 1% 이상을 가진 주주들이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또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는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이사들과는 분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토록 했다.

자회사 경영진 부정도 소송 가능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도 포함
새누리 김세연 등 의원 120명 동참
재계 “투기 세력 악용 소송대란 우려”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소액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원격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또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 이사 선임시 1주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사외이사가 대주주의 의사에 좌우되지 않도록 전직 임직원의 이사 취임 제한 기간을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기존 사외이사도 6년 이상 연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사주조합이 추천하는 한 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는 조항도 마련해 사외이사진 구성에 근로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포용적 성장이 필요한데도 제도적 개선이 미흡하다”며 “개정안을 통해 근로자와 소액 주주의 경영 감시와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더민주 소속 의원 107명 외에 국민의당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 정동영 의원 등 12명이 참여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김세연 의원이 동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한다는 집중투표제는 외국계 투기 펀드 등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소송 대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다중대표소송제가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소송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非)상장사 가운데서도 상장사가 30% 이상 출자한 기업 6000곳 이상(2015년 말 기준)이 잠재적인 소송 대상이라는 게 상장사협의회 분석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악용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골탕 먹을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유일하게 도입한 일본도 100%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강제하는 것도 결국 감사위원(이사)에 대한 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게 될 것으로 재계는 분석했다. 특히 지주회사의 경우 최대주주 이외의 우호적 지분 확보가 어려워 외국계 펀드의 이사회 장악에 적극적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는 지난해 삼성과 외국계 투기자본인 엘리엇의 경영권 분쟁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내 기업의 방어 수단이 미흡한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이번 법안은 대주주의 재산권과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과도한 자금 투입에 나설 경우 결국 중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탁·박성우 기자 sunt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