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넘어선 폭력투쟁에 강경 대처"|민정연수원 농성학생 전원구속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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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 농성사건 관련 학생 1백91명을 전원 구속키로 한 결정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공공기관 점거사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굳힌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관계자들은 이 같은 초 강경 자세의 배경으로 한때 소강상태를 보였던 학생운동이 단순한 시위의 차원을 넘어 방화 같은 폭력을 동원하는 투쟁으로 확산됐고, 운동권 학생들의 연계투쟁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나온 점 등을 꼽고있다.
수사당국은 당초 종전의 농성학생 처리방침대로 주동자 및 적극 가담자는 구속하고 단순가담자는 즉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19일 상오 긴급 소집된 대책회의에서 방화와 극렬해지고 있는 폭력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다수 의견에 따라 농성자 전원을 구속하게됐다는 것이다.
◇전원구속 배경= 학생들의 방화행위는 농성 동기의 순수성 여부에 관계없이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단순한 농성시위 사건과는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제5 공화국 들어 모두 21건의 점거농성사건이 있었으나 고의로 불까지 지르는 폭력사태는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더 이상 학생시위가 극렬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화죄는 형법상의 수많은 범죄 중에 살인· 강도 등에 다음가는 중요범죄로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인 만큼 단순한 시위농성사건과 같은 차원에서 다룰 수 없다는 것.
한 검찰간부는 연행된 학생들이 모두 방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데다 학생들을 선별적으로 구속할 경우 수사 시간에 쫓겨 방화 주동자를 풀어줄 우려가 있고, 풀려난 학생이 또 다른 점거·방화사건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아 수사 원칙상 전원 신병확보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수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점거 후 방화라는 새 양상과 함께 2백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신속히 연락·집합할 수 있는 시위수법의 변모도 더 이상 온건하게 대처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더우기 이번 사건을 통해 운동권 학생들이 일련의 투쟁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온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전학련 산하 팟쇼 헌법철폐투쟁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힌 학생들은 그들의 요구사항을 통해 현행 헌법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있고, 이미 용공으로 규정된 삼민주의에 입각한 「삼민 헌법 쟁취」 등을 주장해 더 이상 우리 사회와 대학에 이들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
검찰 관계자들은 농성학생 전원 구속조치를 69년 일본 동경대 사건의 예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69년1월 동경대 급진 대학생 1천4백여 명이 구내강당을 점거, 교수들을 거꾸로 매달아 폭행하고 이를 말리던 동료 학생들을 칼로 찌른 사건이 발생한 뒤 수사당국이 무려 6백9명에 이르는 학생을 주거침입 및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한 전례도 있으며 학생시위의 한계를 넘어선 점거방화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정상참작도 있을 수 없다는 것.
◇구속결정=검찰·경찰· 문교부 등 학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19일의 대책회의에서 경찰은 지금까지의 농성사건에서 연행 학생 중 평균 15·8%가 구속됐던 점을 들어 사건의 비중을 고려하더라도50% 구속· 20% 입건· 30% 즉심 안을 제시했으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보다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을 보여 농성자 전원을 법대로 처리키로 했다는 것.
대책회의에서는 목지지를 알지 못하고 단순히 가담한 학생들도 대학생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전원 구속해야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검찰도 18일 하오 서울지검 최환 공안부장이 사건 현장에 다녀온 뒤 강경한 분위기여서 전원 구속안 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구속자처리=검찰 관계자는 연행됐던 학생들이 방화부분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앞으로 경찰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방화 및 점거농성의 주동자가 밝혀질 경우 기소단계에선 일부 단순 가담자들이 기소유예 등으로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도 송치 후 조사과정에서 반성의 빛이 뚜렷한 학생에 대해서는 기소단계에서 선별 처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구속자 수가 많기 때문에 주모자와 적극 가담자 등 45명 정도만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맡도록 하고, 나머지 학생들에 대해서는 동부· 남부·북부 등 3개 지청으로 분산 송치토록 계획을 짜놓고 있다.
◇대책=경찰은 오수진 군 등 수배 학생들에 대한 검거체제를 재정비하는 한편 주요 공공시설 2백51개소에 대한 경계태세를 대폭 강화했다.
정부주요기관과 외국공관 등 45개소를 A급으로, 각 정당 시-도지부 등 98개소를 B급으로, 국내의 외국인 투자기관과 각 정당의 주요인사 자택 등 1백8개소를 C급으로 분류, 모두 5천4백50명의 경비인력을 배치해놓고 있다.
이와함께 기습 점거가 우려되는 모든 시설에 대해 자체 경비를 강화하고 신속한 신고체제를 갖춰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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