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있는 북극권 맞춤형 협력 통한 신뢰 구축 우선돼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6호 14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북극해까지는 약 3700㎞로 서울에서 방콕까지의 거리 정도다. 그것도 거친 환경과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력, 체계적인 정책,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적·물적 역량 없이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곳이다. 북극이 필요로 하는 것, 북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자만이 북극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1987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무르만스크 연설을 통해 40여 년간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북극을 비핵화하고 자원개발과 과학연구를 활성화해 상선들이 다닐 수 있는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자고 제안한 지 어느새 30년이 지났다. 8개 북극권 국가가 참여한 정부 간 협의체 북극이사회가 구성된 지는 올 9월이면 꼭 20년을 맞게 된다.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가오는 2017년은 전 세계가 다시 한번 북극을 주목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우선 지난해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내년부터 북극이사회 의장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북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기반 마련이 시작되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항로가 등장할 것이다.


러시아·중국·프랑스 기업이 200억 달러 가까이 투자한 러시아 야말 반도의 천연가스전에서 첫 상업 생산이 시작되고, 우리나라에서 건조한 최첨단 액화천연가스(LNG)선이 이를 운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마련한 극지 해역에서의 선박운항 규정(Polar Code)도 내년 1월 1일부터 공식 발효된다.


93년 당시 한국해양연구원의 조그만 실험실에서 시작된 우리의 북극에 대한 연구는 이제 다산과학기지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운영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정책 면에서도 우리나라는 2013년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로 가입했고,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7개 정부부처 합동으로 북극정책 기본계획도 마련했다. 국제협력을 위한 기반 강화를 위해 북극이사회와의 연대 강화, 과학 협력을 위한 양자·다자간 협력은 물론 원주민들을 초대하는 등의 직접적인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국내 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과 미래세대 간의 교류 촉진을 위한 북극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도전 과제도 많다. 남극과 달리 북극권은 일부 공해(公海) 구역을 제외하고는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구성된 이른바 ‘임자가 있는 땅과 바다’다. 또 북극권에는 원주민을 포함해 400만 명에 이르는 거주민이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의 영향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위축에 따라 직간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모국인 북극권 국가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선뜻 외국 기업과 손을 잡기 어려운 구조다.


물론 사회·문화·정치적 상황이 매우 다양한 북극권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다루기는 무리가 있다. 인류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지역도 있고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북극 진출은 이처럼 북극권 국가 및 원주민들이 처해 있는 다양한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협력을 통한 신뢰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 역량은 이 같은 협력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연구 일정에 쫓기는 아라온호에 이어 북극 연구와 조사를 전담할 제2 쇄빙연구선 도입에 차질이 없기를 기대해본다.


김성귀?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