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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의 리더 | 유창범 BoA 서울지점장] 저금리 기조에선 외환투자 도전할 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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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범 BoA 서울지점장.

“외환투자는 주식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특히 그렇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세종대로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에서 만난 유창범 지점장의 말이다. 그는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누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해당 국가의 통화에 투자하는 게 외환투자의 기본”이라며 “안전자산이 주는 수익률이 높지 않은 만큼 비교적 변동성이 큰 외환투자가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지점장은 20년 가까이 FX딜링 업무를 해온 베테랑 외환딜러다. 지난 1995년 장기신용은행에 입행한 후 JP모간체이스를 거쳤다. 2001년부터 BoA메릴린치 서울지점에서 근무해 2012년 지점장으로 선임됐다.


100엔선 지키려 일본 정부 개입할 수도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치열한 눈치싸움이 진행됐다. 특히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6월 16일 기존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로 발표하면서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외한시장의 변수로 작용했다. 통화정책 유지 결정으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을 저지하고자 개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변수 많지만 본질은 주식투자와 닮아 … 경제구조 변화 주시해야

그러나 유 지점장은 “인위적인 변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파괴적인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엔화가 지금도 가치에 비해 싼 건 맞다. 일본이 여러 이유로 약한 엔화를 원하기 때문에 지금 수준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달러·엔 환율이 상징적인 100엔선을 뚫고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개입이나 통화완화 등의 방법을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폭은 1년 전에 비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엔화가치가 많이 떨어진데다, 엔저로 인한 자국 내 역효과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엔저 영향으로 원화 가치 역시 약해질 수 있지만 이는 시장의 혼란을 일으키는 무질서한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지점장은 이런 단기 이슈보다는 더 근본적인 요소가 엔화 관련 변동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정부부채다. 현재 일본정부의 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20%에 달한다. 국채 이자가 1%라면 일본 정부는 매해 쿠폰 지급에만 GDP의 2.2%를 쓰는 셈이다. 유 지점장은 “국채 대부분을 일본계 기관이 보유하고 있어 관리 범위 안에 있다고 보고 있지만, 어떠한 이유로 안정성에 위협을 받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가능성은 아주 작지만 이는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가 더 강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다시 불 붙은 시장의 중국 위안화 우려에 대해서도 유 지점장은 “변동성도 금융시장 발전의 척도 중 하나”라며 이를 환율 시장화 개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더 걱정할 건 한국이 외환위기 때 겪은 것처럼 시장은 움직이고 싶어 하는데 중앙은행이 임의적으로 변동성을 누르다가 폭발하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지금 변동폭을 확대하는 건 그런 위기 전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당국 역시 외환시장의 변수에 대비해 최근 은행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선물환포지션 한도 상향 조정 등을 골자로 한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LCR은 한 달 기준의 외화 현금, 외화지급준비금, 고신용채권 등 고유동성 외화자산을 순 현금유출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즉 국채 등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의 최소 의무보유비율이다. 이 지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미국 금리 인상 등 위기 상황에서 은행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크다. 다만 건전성 제도가 당장 외환시장에서 특별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지점장은 “이번에 개편한 외환 건전성 제도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한 차원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스템 안에 외화 유동성이 충분한 지금 상황에서는 제도로 인한 변화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외환시장이 단기적인 변동성에는 어느 정도 버틸만한 체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외국인이 국내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다고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외자산은 대외부채보다 많다. 이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국내 자산이 투자한 외국인이 환헤지를 할 때 우리도 대외자산으로 상쇄할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또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외국에 줘야 하는 대외채무의 대부분이 원화로 돼 있고, 반대로 받아야 할 대외채권은 외화로 돼 있어 만약의 사태로 환율이 올라도 무질서한 움직임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금리·물가·노동생산성 등이 외환투자 변수
이에 따라 그는 국내 외환시장이 단기 이슈보다는 구조적인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후장대 제조업 수출 위주의 한국의 산업구조로 인해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에 뒤처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한 경상수지 흑자를 쌓았음에도 원화가 그만큼 강해지지 않은 건 이에 대한 고민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변하는 경제 여건에서 한국이 좋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게 ‘재료’라면 그럼에도 여전히 글로벌 교역시장에서 일정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급’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아직은 수급이 재료를 억누르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재료가 발현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재료가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만큼 좀 더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환율은 단기로 보면 바쁘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큰 트렌드 안에 있다는 게 유 지점장의 지론이다. ‘주가는 산책 나온 주인과 개’라는 증권가 격언과 비슷하다. 통화 가치가 해당 국가의 펀더멘털에 비해 강세를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반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결국 펀더멘털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외환투자는 주식과 큰 그림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어떤 통화를 가지고 싶다는 얘기는 해당 국가의 자산을 갖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 지점장이 금리·물가상승률·노동생산성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외환투자의 주요 변수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사듯이 그 나라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외환에 투자하는 것도 저금리 시대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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