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특융, 내달부터 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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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당초 지난7월중에 시행하려고 했다가 지금껏 미루어온 시중은행에 대한 한은특별융자가 늦어도 내달초부터는 실시될 예정이다.
정부는 국회에서의 새해예산안및 조세감면규제법개정안이 통과되는대로 한은특융을 시작하기로 방침을 정해놓고있다.
지난 6월20일 금융통화운영위의 의결을 거쳐 길을 마련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반년이 지나도록 미루어온 것은 순전히 국회관계때문이었다.
국회에 상정되어있는 조세감면규제법의 개정안이 심의되게되면 부실기업과 부실은행들이 도마위에 올려지게되고 따라서 한은의 특융내용도 공개안할수없게되므로 조감법개정안처리뒤로 미루어오고 있는 것이다.
특융계획을 내놓은지 6개월 가까이 되는데도 그 규모가 얼마나 될것이며 그대상과 은행별 실정에 대해선 관계자들은 모두 쉬쉬하고 있다.
다만 현재 시중은행이 안고있는 「부실」의 암을 그대로 놔두면 은행은 파산지경에 이르게되고 그것은 국가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리라는 진단만이 한은특융및 조감법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위해 얘기되고 있을뿐이다.
5개시중은행과 외환은행의 부실채권은 정확한 숫자를 내놓고 있지않지만 엄청난 규모라는 점엔 이의가 없다.
시중은행의 경우 한 은행당 평균 자본금의 6배인1조원 규모는 되리라는 추산이다. 시중은행의 부실화는 최근2년사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영동개발사건을 비롯, 경남기업등 건설업체들의 부실화, 해운업계의 불황, 그리고 국제그룹의 해체등으로 이어지는 큰기업의 잇단 파산과 맞물러 은행의 부실화는 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일반은행의 대한은 차입금이 지난 83년말 현재 5조7천6백55억원에서 금년8월말에는 10조3천9백9억원으로 2년사이에 약 두배로 늘어났다.
늘어난 한은 차입금의 대부분이 수출금융등 정책금융을제외한 일반자금이다. (3조9천7백억원에서 6조3천7백억원으로 증가).
금융당국자는 해외부문에서의 통화환수로 인한 은행의·자금압박을 덜기위한 유동성조절자금이 큰 몫을 차지하고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중태반은 부실기업의 뒤치다꺼리로 쓰여진 것이다.
가장 큰 골치인 건설업계하나를 보더라도 84년말현재 1조7천3백64억원이던 시중은행의 대건설업체 운전자금대출금이 올해 8월말에는 2조9천4백93억원으로 급증했다.
불과 8개월사이에 1조2천억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국내외 건설불황이 계속되는 기간에 엄청난 자금이 건설업의 운전자금으로 지원되었다는것은 「부실」의 뒤치다 꺼리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손을 맞잡고 부실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기업은 기업대로 빚덩어리가 되어 은행의 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은행마다 원리금을 못받은채 잠긴 사장대출이 수천억원씩에 달한다고하면 수지와 자금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정부는 한은특융이라는 비상편법을 동원하게 된것이고 세찬 비판에도 불구, 조세감면규제법의 개정안을 들이밀게 된것이다.
내달초에 실시할 한은특융은 시중은행의 한은차입금 가운데 주로 부실기업을 뒤치다꺼리하는데 쓰인 연6%짜리의 일반차입금 (A1자금)이 대상이 된다.
특융될 한은차입금은 대출기한 1년으로 상환기한이 도래하는것부터 연6%짜리를 연3%짜리 (A2자금)로 바꾸어주겠다는 것이다. 신규통화증발없는 대환방식이다.
특융대상 규모는 현재 약1조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러졌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그룹정리등 신규 발생하는 은행의 부실기업지원자금도 포함시킬 방침이기 때문에 그 규모는 더 늘어날것이 분명하다.
이가운데 연내로 기한이 돌아오는 약3천억원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앞으로 1년이내에 모두 대환하게 된다.
시중은행별 특융규모는 부실기업을 얼마나 안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동개발사건만으로 2천여억원의 거액이 묶이고있는 J은행, 경남기업을 대우가 인수할때 그 지원자금으로 2천억원을 대출해준 O은행등 은행마다 적지않은 「부실」 지원의 후유증 때문에 몸살을 앓고있다.
은행들은 주로 해외건설업체와 해운업체를 지원하다가 멍이 들었다. 그밖에 합판과 같은 사양산업도 큰 부담을 준것은 물론이다.
해외건설업체 하나가 잘못되면 그 뒤를 밀어주고 있던 은행은 수천억원을 물리는수가 십상인데 해외건설업 전체가 불황이고 은행마다 몇개씩을 주거래하고 있는판이니 온전할수가 없는 일이다.
시중은행의 부실기업지원자금은 대개 10∼15년의 장기이고 규모가 크기때문에 정부는 향후5∼10년의 기간을두고 정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은행수지가 현저하게 개선되고 부실기업이 어느정도 살아날때까지는 한은특융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융이 실시되면 시중은행으로서는 한은에 갚아야 할이자 연3%분을 탕감받게되므로 전체로 연간 4백억원(특융규모1조2천억원기준)의 수지개선효과를 보게된다.
금융당국자는 한은특융은 이미 나가있는 자금가운데 일부에 대해 적용 이자율만 바꾸어주는 것이므로 통화증발은 없으며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거액의 자금이 생산자금화하지 못하고 꼭 묶여있는채 사장되어있다는 현상을 생각하면 단지 『통화증발없다』는 변명만으로 위안을 삼을수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기업이 좋은 아이디어와 창업의 의욕을 갖고있으면서도 자금이 없어 발을동동 구르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특혜적인 한은특용 대상 자금중 적지않은 부분이 정부 지시금융의 산물이라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정부·은행, 그리고 관련 기업 그 어느쪽도 책임을 면할수 없을 것이다. <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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