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특사 포옹하고 중국에 축전…자신감 붙은 北 김정은 외교행보 속 숨은 의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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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 1일자 1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쿠바 특사 일행을 얼싸 안는 사진이 실렸다.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이라는 새 직책을 챙기며 7차 당대회(5월6~9일)에 이어 자신의 권력구조를 정비한 김정은 위원장이 첫 행보로 외교를 택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외국인 사절을 포옹으로 환영하고 미소로 환담을 나누는 사진을 선별해 공개했다. 세련된 외교술을 펼치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노동신문은 “시종 친선적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며 “국제정세에 대한 의견들이 진지하게 교환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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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특사인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를 포옹한 뒤 그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 사진들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1일자 1면에 실렸다. [사진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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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특사인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를 포옹한 뒤 그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 사진들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1일자 1면에 실렸다. [사진 노동신문]

쿠바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건 지난달 28일이다. 김정은은 이들을 이틀간 만나지 않은채 최고인민회의를 치른 뒤 ‘국무위원장’으로 맞이한 첫날인 지난달 30일, 이들을 만났다. 첫 손님으로 쿠바를 택한 것엔 보이지 않는 의도도 숨어있다. 한때 ‘형제국’으로까지 불렸던 쿠바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이어 한국과도 지난달 사상 최초 외교장관회담을 여는 등 관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북한과 쿠바간의) 전통적 친선협조관계가 앞으로 더욱 확대발전되리라는 확신”이나 “반제(반미) 사회주의 위업의 기치를 변함없이 들고 나가려는 쿠바의 의지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이 메시지는 한·미를 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의 국무위원회 구성을 봐도 그가 앞으로 외교를 강조하겠다는 뜻이 드러난다. 스위스 유학시절 자신을 돌봐준 이수용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무국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을 국무위원으로 포함시켰다. 부위원장 3명과 위원 8명으로 구성된 국무위원회에 외교라인 투톱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고려대 남성욱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는 “당 위원장에 이어 국무위원장으로 권력기반을 다진 김정은이 외교 보폭을 넓히고 있다”며 “대외 및 대남 공세를 더 세게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1일 보인 외교적 보폭은 실제로 넓었다. 이날 김정은은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도 축전을 보냈다. 중국공산당 창건 95주년 축하를 계기로 보낸 축전에 김정은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조·중(북·중)친선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킴으로써 두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추동하며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할 용의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사망한 뒤 냉랭해진 북·중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키자는 의지가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 북한이 내민 손을 잡을지 여부다. 국가전략연구원 이수석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원칙을 스스로 깰 수는 없다”면서도 “중국은 현재 한·미가 주도하는 대북 제재 국면을 대화 쪽으로 바꾸고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기에 북한이라는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중간 교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도 “단기적으로는 한·미가 주도하는 제재 국면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대화국면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북·중간 전략적 이해가 일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계속 주장하는 이상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쉽게 성사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30일 한국과 미국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기관으로 승격시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다. 승격 후 처음 낸 이 성명에서 조평통은 “화성-10(무수단 탄도미사일) 발사로 정세가 달라졌다”며 “우리는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됐다. 현명한 선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들이 “최강의 핵보유국”이라며 “우리의 전략적 지위는 더욱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1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북한의 주장을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정준희 대변인은 “북한은 국제사회가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부과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핵보유국의 미몽에서 깨어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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