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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뺨 검둥오리 가족의 특별한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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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경남 창원시 의창구 낙동강유역환경청(이하 낙동강청)에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나타났다. 이들은 낙동강청에 있는 49.5㎡ 넓이의 연못 풀숲에 11개의 알을 낳았다. 암·수가 번갈아 가며 정성스레 알을 품었다. 그러던 지난 26일쯤 알을 깨고 11마리의 새끼들이 비틀거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한동안 어미 품에 몰려 있던 새끼들은 엄마를 따라 걷는 연습을 하거나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낙동강청 직원들은 새끼들이 태어난 날부터 1시간씩 교대로 오리가족을 지켜봤다. 혹시 야생 들고양이 등 천적들이 새끼를 헤치지 않을까 우려해서였다.

이틀 뒤인 지난 28일 오전 4시 30분쯤 엄마와 새끼 오리 11마리가 낙동강청을 나섰다. 이들은 수풀과 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다 경남도청 앞 8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폭은 대략 30m 였다. 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생태사진가 조모(56)씨는 “무작정 도로를 건너간 것이 아니고 낙동강청을 나와 도청 앞 횡단보도 옆을 따라 건너갔다”며 “어미가 앞장서고 새끼가 뒤따라 오는 형태로 일렬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는데 마침 지나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아빠 오리는 이들이 낙동강청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경남도청 앞에 있는 3576㎡ 넓이의 연못에 도착하기까지(500m) 마치 이들의 안전을 지켜보기라도 하듯 공중을 선회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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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오리 가족은 도청 연못에 도착한 뒤 가장자리의 갈대숲에 숨어 휴식을 하며 수초들 사이에 있는 곤충들을 주로 잡아 먹었다. 이 연못은 가시연꽃과 수련 등 각종 수생식물이 살고 있고, 비단잉어 등 물고기도 30여 종이 있었다. 새끼들은 며칠간 어미와 함께 연못에서 헤엄을 치며 다리의 힘을 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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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30일 오전 8시 40분쯤 오리가족이 또다시 연못을 떠나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끼 몇 마리가 연못 주변 화단의 턱을 넘지 못해 30분 정도 사투를 벌이다 결국 포기하고 연못으로 돌아왔다. 2차 도전이 시작된 건 오후 2시30분쯤 우회경로를 통해 도청 광장까지 진출했다. 여기서 경남도립미술관까지 또다시 대열을 이뤄 이동했다. 그러나 오가는 차가 많아 오리들이 놀라 우왕좌왕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도청 직원 등이 경찰에 연락을 해 차량 통제를 하면서 오리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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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들 오리는 도청 연못에서 1㎞ 정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창원대 앞 창원천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낙동강청 이성규 전문위원은 “지난해에도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비슷한 경로로 우리청에서 알을 낳아 부화한 뒤 도청 연못을 거쳐 창원천으로 간 일이 있다”며 “아마도 같은 개체가 이번에도 우리청에 온 것이 아닌가 추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수 한국조류보호협회 창원지회장은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새끼 11마리를 데리고 먹이가 풍부한 서식처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이동하는 어미 오리의 모습이 경외스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사진 낙동강 유역 환경청·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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