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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한 무주·영동 ‘수돗물 나눔 협약’ 없었던 일 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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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이 무주군 설천면에서 이웃인 영동군 용화면 오지 마을에 상수도를 공급하기로 한 협약을 파기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주민들이 “단체장들이 일방적으로 체결한 협약”이라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전북 설천면·충북 용화면 이웃 마을
용화면에 무주서 상수도 연장 계획
설천면 주민들 반대로 결국 무산
지난해 9월 협약 변경하고 공급 축소

30일 영동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박세복 영동군수와 황정수 무주군수는 “영동군 용화면 남악마을에 수돗물을 우선 공급하고 추후 용화면 일대 급수구역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작성했다. 영동군이 무주 설천정수장의 물을 쓰는 대신 매달 요금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영동군은 “가뭄 때마다 물부족에 시달리는 용화면 주민들의 불편이 해소됐다”며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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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은 지난해 16㎞에 달하는 송수관로 연결을 위해 54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무주군 설천정수장에서 5.8㎞ 떨어진 용화면 월전리 남악마을을 포함해 용화·용강·창곡·여의리 등 5곳 마을에 물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관로가 설치되면 용화면 전체 1000여 명이 혜택을 본다.

설천면에는 하루 4500t의 정수능력을 갖춘 정수장이 있다. 반면 용화면은 가장 가까운 영동 학산정수장이 30㎞ 넘게 떨어져 있어 수돗물을 마시지 못했다. 대신 지하수나 계곡수를 이용했다. 이마저도 가뭄 때마다 부족해 안정적인 수원 확보를 요구해 왔다. 허충복(65) 월전리 이장은 “민주지산 기슭인 용화면 일대는 탄광지역이 많아 지하수도 수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용화면과 설천면은 금강 상류인 남대천을 사이에 둔 마을로, 생활권이 같다. 장터 등을 공유하고 농사철에는 품앗이도 했던 이웃 사촌이다. 남악마을에서 길이 90m의 남악교를 건너면 무주 땅이다.

하지만 수돗물 나눔 협약은 지역간 분쟁을 불러왔다. 설천면 주민들은 지난해 5월 “용화면 전체에 상수도를 공급해선 곤란하다”며 “우리도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마을이 많은데 남의 동네부터 물을 주냐”며 반발했다.

무주군의회 이성수 의원은 “주민 동의를 얻지 않은 밀실 협약이었다”며 “설천면에도 길산·기곡리 등 지하수와 계곡 물을 마시는 미급수 지역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 물을 공급해 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설천면 관내 상수도 미급수 지역은 17개 마을 360가구다.

이 의원은 “무주군의 수도 요금 생산단가는 1t당 2300원, 공급단가는 450원으로 저렴하다”며 “용화면에 똑같이 450원에 공급하면 영동군에 연간 1억5000만원씩을 보전해 주면서 물을 대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반발이 일자 영동군과 무주군은 지난해 9월 남악마을 12가구에만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으로 협약을 변경했다. 무주군은 “당초 협약은 경제성 논리보다 인도적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최성용 무주군 상수도 담당은 “남악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데다 지난해 가뭄으로 인해 식수를 급수차 등으로 운반해 해결하고 있던 현실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동군은 올해 용화면 일원에 관정 2곳을 개발해 자체적으로 수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영동·무주=최종권·김준희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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