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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절 끝 올림픽 선발전 간 신종훈, ‘복싱 코리아’ 마지막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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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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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훈

“힘이 하나도 없어요. 온몸이 욱신욱신하네요.”

출전 불허 징계 … 대회 닷새 전 ‘기회’
김밥 네 알만 먹고 하루 새 2.9㎏ 빼
“하늘이 준 기회, 티켓 꼭 따겠다”

29일 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신종훈(27·인천시청·사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는 이날 하루 동안 체중을 2.9㎏이나 줄였다고 했다. 신종훈은 “힘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고, 흥분도 된다. 리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종훈은 지난 29일 오전 ‘올림픽 선발대회 출전을 허락한다’는 국제복싱협회(AIBA)의 공문을 전달받았다. 그는 “지난주까지 AIBA에서 연락이 없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할 뻔했다. 그러나 사흘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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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B(AIBA 프로복싱)·WSB(월드시리즈복싱) 선수를 대상으로 한 올림픽 선발전은 오는 4~9일 베네수엘라 바르가스에서 열린다. 체급별로 3위 안에 들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한국 선수로는 49㎏급의 신종훈과 56㎏의 함상명(21·용인대)이 출전한다.

당초 AIBA는 신종훈의 출전을 불허했다. APB 대회에 2경기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종훈은 지난 2014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APB 대회에 불참해 무기한 선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신종훈의 징계는 지난 4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났다. 신종훈 측은 “APB·WSB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선발전에 출전할 수 있느냐”는 질의서를 계속 보냈지만 AIBA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대회 닷새 전에야 답신을 보냈다.

실낱 같은 기회가 생겼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체중 감량이 만만찮다. 2일 열리는 계체량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뿐이었다. 52.8㎏이었던 그는 반나절 만에 2.9㎏를 감량, 49.9㎏를 만들었다. 독종으로 유명한 그는 더운 날씨에 두툼한 땀복을 입고 3시간 동안 죽어라 주먹을 휘둘렀다. 신종훈은 “하루종일 김밥 네 알만 먹었다. 물도 안 마시고 입만 축였다”고 말했다.

1948년 런던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 복싱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3, 은 7, 동 10개를 따냈다. 그러나 30일 현재 한국은 리우 올림픽 티켓을 한 장도 따지 못했다. 올림픽에 한 명도 나가지 못하는 건 80년 모스크바 대회 이후 처음이다. 당시엔 정치적 문제로 대회에 불참했다. 36년 만에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할 위기에 빠졌던 한국 복싱은 신종훈의 주먹에 기대를 건다.

신종훈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헝그리 복서다. 여섯 식구가 10평짜리 집에서 살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복싱 대회에 나가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글러브를 낀 그는 스무 살 때부터 가장 역할을 했다. 기어이 49㎏까지 감량한 신종훈은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30일 베네수엘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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