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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마겟돈’ 피하는 세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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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파국은 없었다. 영국이 지난달 24일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를 결정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EU 탈퇴라는 미답의 영역에 발을 들인 영국의 선택에 휘청댔던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충격을 털어내는 모습이다.

미 금리 인상 연기 가능성
신흥국 반색, 헤알화 껑충
주요 EU국 정치변수 주목

브렉시트가 결정된 지난달 24일 세계 경제는 요동쳤다. 미국과 유럽·아시아 증시는 3~8% 급락했다. 통화가치도 출렁거렸다. 영국 파운드화는 8.05% 폭락했고 일본 엔화는 3.85% 급등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가 27일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헤지펀드는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했다. 충격파가 이어지며 세계 경제는 브랭오버(Brangover·브렉시트와 숙취(Hangover)의 합성어로 브렉시트의 충격으로 허우적대는 상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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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를 가장 먼저 털어낸 곳은 아시아 시장이다. 한국과 일본 증시는 지난달 27~30일 모두 상승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도 28일부터 반등하며 정신을 차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치러진 23일부터 30일까지 닛케이 지수는 3.05%, 코스피 지수는 1.12% 하락했다. 영국의 FTSE100 지수는 23~29일(현지시간) 오히려 1.58% 상승했다.

투자은행 레이먼드 제임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콧 브라운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브라마겟돈(Brarmageddon)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마겟돈은 브렉시트와 아마겟돈(Armageddon·종말)의 합성어)로 브렉시트로 전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한다.

브렉시트가 브라마겟돈으로 치닫지 않은 것은 영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천명하며 충격 확산을 선제 차단한 게 주효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때까지 시간이 있다는 점을 투자자가 깨달으며 냉정함을 되찾은 것도 시장을 진정시키고 있다. 앤드루 시츠 모건스탠리 수석 전략분석가는 “투자자들이 브렉시트의 위험이 리먼브러더스 사태나 유럽 재정위기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을 찾은 시장은 손익 계산에 나섰다. 브렉시트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자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연기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11월까지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을 0%로 예상하고 있다.

반색하는 곳은 신흥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미뤄지고, 영국 등 선진국의 정치적 혼란이 심각해지며 신흥국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29일(현지시간) 브라질 헤알화 값은 전날보다 2.58% 상승했다.

이번 위기는 버블이 붕괴해서가 아니라 기존 경제나 금융질서에서 이탈해 빚어졌다. 시장은 브렉시트의 후폭풍이 영국·EU의 협상과 내년에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 등 각국의 정치 일정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이 갑작스러운 충격파로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정치적 변수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출렁이는 ‘폴리티코 마켓’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헤지펀드 전문 매체인 알파는 “향후 패턴이 2009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의 모습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스콧 브라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U가 해체되고 영국이 쪼개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브렉시트의 낙진이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며 “투자자들은 브릴랙스(Brelax·브렉시트에 릴랙스(Relax·안심)를 합친 말)하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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